崔榮起 < 한국노동연구원장 >

경제사회정책 논의의 초점이 일자리 문제로 모아지고 있다. 경제가 몇 퍼센트 성장했느냐 보다 일자리가 얼마나 증가했느냐가 관심사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중간 수준의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는 데에 이의가 없다. 우리만이 아니라 OECD 국가 모두가 마찬가지다. 고용없는 성장과 양극화 고령화 추세는 선진국 공통의 과제이다. 궁극적 해법도 일자리로 귀결된다. 이들 나라간 고용창출전략은 별 차이가 없다. 신(新)성장동력 발굴과 기술혁신,유연화와 규제완화를 통한 투자 촉진,그리고 은퇴연령을 늦추기 위한 각종 규제와 인센티브 등이 주조를 이룬다. 우리도 비슷한 정책메뉴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고용전략은 이것만으로 불충분한 그 무엇이 있다.

한국의 특수성이다. OECD 분석이나 간단한 국제 비교로 쉽게 확인되는 대로 우리 노동시장에는 자영업과 영세사업장에 너무 많은 인력이 잠겨 있다. 영세자영업과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들의 고용지위는 매우 낮고 불안정하다. 실업(失業)으로 낙오하기 직전 상태의 생계형 자영업이 많다. 비자발적 비정규의 온상(溫床)이기도 하다. 반면 공공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는 OECD 국가의 비슷한 소득수준시기와 비교해 너무 적다. 따라서 한국적 고용전략은 취약부문의 일자리 혁신과 공공사회서비스 부문의 일자리 확충을 지향한다.

외환위기 이후 실업대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영업과 비정규직으로 너무 많은 인력이 유입되었다. 이제는 시장의 힘에 의해 구조조정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 부문의 고용이 감소하고 있다. 2004년 이후 일자리 증가가 연 30만 정도에 그치는 이유 중 하나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구조조정의 흐름을 역전시킬 수도 없다. 어차피 이런 형태의 일자리는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산성을 높이고 일자리를 고급화하기 위한 통상적인 정책수단은 규제완화와 개방, 그리고 유연성 제고 등이다. 그러나 이 부문은 이미 충분히 유연하고 규제의 문턱도 낮다. 오히려 IMF 10년간 개방과 규제완화의 결과로 이 부문이 지나치게 팽창되고 일자리의 질(質)이 저하되었다는 평가다. '노는 남자 100만'과 많은 청년실업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지속되고 외국인 노동자 수가 40만명을 초과하게 된 이유는 일자리의 질과 직결된다. 어느 지점에선가 이 부문의 저임-저숙련-저생산성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첫째, 이 부문으로의 과도한 인력유입과 이로 인한 출혈경쟁을 지양(止揚)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조기퇴직과 아웃소싱, 그리고 비정규직 채용이 남용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비용절감을 통한 단기 수익증대 경쟁이 오히려 경제 전체로 보면 저숙련 인력을 늘리고 중소기업 경쟁력 기반을 잠식하여 기업생태계를 위협하는 결과를 야기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와 기업의 반성과 함께 적극적인 개선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둘째, 이 부문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충과 교육·훈련 투자, 그리고 근로기준행정의 강화가 필요하다. 안타까운 것은 사회안전망이 가장 필요한 취업애로계층에게 고용보험과 같은 안전망서비스가 가장 적게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투자와 공공서비스의 부족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전직(轉職)훈련이나 취업지도를 위한 투자와 서비스가 병행되어야 한다. 근로기준을 바로 세우는 것도 이 부문의 일자리혁신에 필수적이다. 근로계약이 불분명하고 산재(産災)와 체불(滯拂)이 빈번한 사업장에 좋은 인력이 모일 리 없다. 지난 3년간 체불임금의 규모가 매년 1조3000억원에 이르고 지난해 28만여명에게 체불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근로기준행정 강화의 필요성을 되새기게 한다.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위해서는 OECD 차원의 보편적인 정책메뉴만이 아니라 한국 특수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즉 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 창출과 영세사업장의 일자리 혁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투자와 공공서비스 확대를 위해서는 정부정책의지도 중요하지만 재계를 비롯한 주요 경제주체들의 합의와 협력이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