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총재로 취임한 이후 줄곧 '매파' 성향을 보여온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태도가 달라졌다.

시중의 풍부한 자금 유동성과 이로 인한 물가 불안(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줄기차게 제기해온 이 총재가 8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가 끝난 뒤 "올해 물가는 2%대에서 안정될 것"이라며 이례적으로 낙관론을 폈다.

지난해 8월 콜금리 인상을 마지막으로 6개월간 시장을 지켜본 그가 물가 불안에 대한 염려를 털어버린 듯하다.

때마침 재정경제부가 내놓은 그린북(최근 경기 동향)에서 "향후 설비투자가 하향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을 우려해 정부와 한은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군불때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날 91일물 양도성 예금증서(CD) 금리가 작년 11월 한국은행이 지준율을 인상한 이후 처음으로 떨어진 것도 이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물가는 매우 안정된 수준"


이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작년 하반기부터 소비자물가와 근원소비자물가 모두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매우 안정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원유가격 및 환율이 모두 물가 안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이 총재는 물가 불안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해왔다.

머지않은 시기에 물가 불안이 가시화할 것이라며 선제적인 차원에서의 금리 인상 필요성을 계속 역설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 달라졌다.

"매우"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가며 "물가는 안정됐다"고 피력했다.

유가와 환율은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대외변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총재의 발언은 '물가에 대한 걱정을 이제는 던져 버리고 경기 쪽에 무게를 싣겠다'는 정책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수요 압력이 약하다"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온 것도 주목해야 한다.

통화 당국의 최고 책임자가 "수요 압력이 약하다"고 말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금리 인하'를 시사한다.

민간 부문의 소비와 투자를 부추기는 금리 인하로 수요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표현이기 때문이다.

◆부동산발 금리 인상 가능성 낮아져

한은은 지난달 통화정책 방향 발표문에서 "선호 지역을 중심으로 주택가격 상승 기대심리가 여전히 잠재해 있는 가운데 가계 부채 증가세도 지속되고 있어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에는 부동산과 가계 부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동산 가격 오름세가 둔화하고 있다"고 밝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 금리 인상 필요성이 낮아졌음을 시사했다.

한은은 또 "상승 모멘텀을 유지하고 있다"고 표현했던 전달의 경기 진단과는 달리 이번에는 "다소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경기 하락에 대한 우려를 시장에 전달한 것이다.

◆경기 부양으로 이어질까


시장에서는 한은이 금리 인하 쪽으로 돌아설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3년물과 5년물 국고채는 한은의 발표가 나온 뒤 한때 0.03%포인트까지 떨어졌으나 이후 낙폭이 줄어들면서 0.01%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91일물 CD 금리도 한은 지준율 인상후 처음으로 0.01%포인트 하락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이 안정됐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른 데다 국제 유가마저 상승 반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한은이 콜금리 인하 쪽으로 방향을 완전히 틀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석원 한화증권 채권전략팀장은 "한은 총재의 발언 수위를 이전과 비교했을 때 경기에 대한 자신감이나 부동산가격에 대한 우려는 확실히 줄어들었다"며 "그러나 하반기 경기 회복 가능성을 한은이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금리 인하까지 기대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현승윤·박성완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