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이석행 위원장은‥ 현장 기름냄새 좋아하는 온건파 노동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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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행 위원장은 투쟁보다 대화를 중시하는 온건 실리주의 노동운동가다.
민주노총 내에선 온건파인 국민파로 분류된다.
그는 현장 선반기능공 출신으로 1977년 방산업체인 대동공업에 병역특례자로 들어간 뒤 1980년 노동조합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노동운동에 첫 발을 담갔다.
1984년 노조위원장에 당선된 뒤 1990년 두원중공업에서 해고되기까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그가 소속된 방산분야 특수사업부가 대동중공업으로 분사된 뒤 해고당시엔 두원중공업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상태임).
1980년대 김금수(현 KBS 이사장),천영세(현 민노당 국회의원),문성현씨(현 민노당 대표) 등 노동운동가들을 만나 다양한 노동이론과 이념을 접하면서 대중적인 '투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현장 노조를 이끌면서 운동철학을 '실사구시'로 정리한 그는 투쟁지향적인 좌파학자나 강성 노조 간부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현장 조합원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을 쏟아왔다.
2005년 2월 민주노총 사무총장 시절 좌파학자들과 사회적대화 참여여부를 둘러싸고 벌인 성명서 대결은 그의 운동방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좌파학자들이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이 위원장은 "투쟁을 부추기지 말라.섣부른 관념적 운동이 얼마나 많은 노동자에게 폐해를 초래했느냐"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기계와 기름은 이 위원장에게 생명이나 다름없다.
그는 "생산현장에서 기름냄새를 맡으면서 기계와 씨름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며 "어머니 냄새 다음으로 좋은 게 기름냄새"라고 말할 정도다.
그는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그만둔 뒤 친구가 경영하는 공장에서 직접 기계를 돌리고 청소를 하며 월수 150만원 정도를 받았다.
가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와 아내가 액세서리에 구슬을 붙여주고 받는 월 60만원 정도의 수입을 합해 근근이 집안살림을 꾸려왔다.
광산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이 위원장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중학교 때는 학비를 벌기 위해 구두닦이를 할 정도로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2005년 11월 민주노총 간부의 금품비리 혐의로 지도부가 총사퇴할 때 함께 물러났던 그가 이제 민주노총 수장으로 되돌아왔다.
이 위원장은 국내 양대노총의 한 축인 한국노총의 이용득 위원장과도 절친한 사이로 끈끈한 신뢰관계를 맺고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
민주노총 내에선 온건파인 국민파로 분류된다.
그는 현장 선반기능공 출신으로 1977년 방산업체인 대동공업에 병역특례자로 들어간 뒤 1980년 노동조합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노동운동에 첫 발을 담갔다.
1984년 노조위원장에 당선된 뒤 1990년 두원중공업에서 해고되기까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그가 소속된 방산분야 특수사업부가 대동중공업으로 분사된 뒤 해고당시엔 두원중공업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상태임).
1980년대 김금수(현 KBS 이사장),천영세(현 민노당 국회의원),문성현씨(현 민노당 대표) 등 노동운동가들을 만나 다양한 노동이론과 이념을 접하면서 대중적인 '투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현장 노조를 이끌면서 운동철학을 '실사구시'로 정리한 그는 투쟁지향적인 좌파학자나 강성 노조 간부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현장 조합원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을 쏟아왔다.
2005년 2월 민주노총 사무총장 시절 좌파학자들과 사회적대화 참여여부를 둘러싸고 벌인 성명서 대결은 그의 운동방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좌파학자들이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이 위원장은 "투쟁을 부추기지 말라.섣부른 관념적 운동이 얼마나 많은 노동자에게 폐해를 초래했느냐"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기계와 기름은 이 위원장에게 생명이나 다름없다.
그는 "생산현장에서 기름냄새를 맡으면서 기계와 씨름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며 "어머니 냄새 다음으로 좋은 게 기름냄새"라고 말할 정도다.
그는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그만둔 뒤 친구가 경영하는 공장에서 직접 기계를 돌리고 청소를 하며 월수 150만원 정도를 받았다.
가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와 아내가 액세서리에 구슬을 붙여주고 받는 월 60만원 정도의 수입을 합해 근근이 집안살림을 꾸려왔다.
광산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이 위원장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중학교 때는 학비를 벌기 위해 구두닦이를 할 정도로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2005년 11월 민주노총 간부의 금품비리 혐의로 지도부가 총사퇴할 때 함께 물러났던 그가 이제 민주노총 수장으로 되돌아왔다.
이 위원장은 국내 양대노총의 한 축인 한국노총의 이용득 위원장과도 절친한 사이로 끈끈한 신뢰관계를 맺고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