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최근 상장 기업들에 "집단소송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기업의 존망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에 대한 대비를 강력하게 하라는 주문이다. 윤 위원장은 "2006년 미국에서 집단소송을 당한 상장기업의 비율(1.5%)을 한국에 적용하면 연간 20여개 상장기업이 증권집단소송을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올해부터 증권집단소송제도 적용대상이 총자산 2조원 미만 기업으로 확대되고,이중대표소송제도 도입이 예정되는 등 기업에 대한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기업들이 무분별한 소송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특히 최근 주총시즌을 앞두고 있는 재계는 집단 소송 관련 준비로 분주하다.

◆늘어나는 분쟁,기업 부담 심화

실제 최근 들어 증권 관련 외에도 '집단소송'이라고 불릴 만한 기업상대 법적 분쟁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굵직한 사례만 꼽더라도 최근 사회 문제화 되고 있는 트랜스지방 유해성 논란과 관련,비만과 심장질환 고혈압 등 성인병 환자들이 식용유 제조 유통회사 등 해당 업체들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트랜스지방 식용유 제조ㆍ유통회사와 치킨 피자 감자튀김 과자류 등 식료품 제조업체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

소송을 준비 중인 시민단체들은 "평소 어느 업체에서 생산한 무슨 제품을 자주 먹어서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는 내용을 온라인상에 올리면 집단 소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집단소송으로 평가받을 만한 단체소송 건수가 늘면서 국내 기업들의 패소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은 국민은행이 '개인정보 유출' 관련,'개인정보가 유출돼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피해를 입은 1026명의 고객에게 10만원씩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특히 이 판결은 재산상의 손해가 없어도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책임을 인정한 것이어서 유사소송에 직면한 기업들의 부담감이 커지고 있다. 이에 앞서 서울지법은 씨티은행 노조 여직원이 사용하지 않은 생리휴가를 근로수당으로 지급하라는 소송을 내자 회사측에 15억8000만원을 보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해외에서도 집단소송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LG필립스LCD는 미국의 반독점법과 소비자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집단소송을 당할 처지다. 기아차도 9402명의 펜실베이니아 소비자들이 제기한 세피아 브레이크 결함에 대한 집단소송과 관련,1심에서 560만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으며 현재 2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소송 준비 강화하는 재계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 실시 등으로 각종 소송위험이 커지자 재계는 관련 대비를 강화하고 나섰다. 증권 집단소송 도입으로 인수합병(M&A) 등 기업의 적극적인 경영 활동까지 소송대상이 되는 등 법률리스크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소송금액도 커져 기업들이 소송에서 패할 경우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자칫 부도덕한 기업으로 낙인찍힐 위험에 고민이 많다.

삼성전자는 소송이 꾸준히 늘 것으로 보고 법무팀 인력을 지속적으로 보강하고 있다. 기업이나 부서,직원 단위에서 집단소송에 걸릴 사례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윤리규정을 강화했다. 특히 공시사항 등 집단소송 발생가능 사안에 대해 IR관련 부서를 중심으로 정기적으로 상황을 검토하고 있다.

LG전자도 공시 관련 부서의 교육을 강화,막연한 장래사업계획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를 제공하거나 낙관적 전망에 기초한 예측 정보를 발표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다. 특히 공시 유관부서뿐 아니라 사내 모든 조직 책임자들에게 공시 관련 업무 규칙을 숙지토록 했다. 기획팀,재무팀,홍보팀 등 공시 유관부서마다 담당자를 따로 선정하는 등 대응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올해 2명의 사법연수원 졸업생을 채용한 한화그룹도 갈수록 소송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장기적인 차원에서 법무인력을 강화하고 있다. 매일유업 등 중견기업들도 소비자 상대 분쟁이 늘어남에 따라 법무팀을 강화하고 나섰다. 전경련도 적법한 정보와 절차에 따른 기업의 경영판단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 사법적 판단의 기준인 '경영판단의 원칙'이 확대 적용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하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지원하고 있다.

김동욱ㆍ김현예ㆍ이태훈 기자 kimdw@hankyung.com



[ 용어풀이 ] 집단소송제

주주1명 승소하면 다른 주주도 배상받아

1명의 주주라도 기업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승소했을 때 다른 주주들도 별도 재판 없이 똑같이 배상받을 수 있는 제도다. 다른 주주들도 소송에 불참하겠다는 의사표시가 없으면 모두 소송당사자로 인정돼 배상받을 수 있다.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해 마련된 제도이지만 소송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크고 기업의 부담도 적지않다.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집단소송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소송제기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2005년 1월부터 미공개정보이용행위나 유가증권신고서 허위기재 등 증권과 관련한 집단소송제만 시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