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바로보기] 한시노예(限時奴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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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얼 <KDI 연구위원>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주를 한다.
개인 차원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때로는 큰 강물처럼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역사적인 이동도 있다.
유럽에서 북미 대륙으로의 이주가 그 중 하나인데,특히 17세기 초엽부터 미국이 독립을 하는 18세기 말까지 이어진 초기 이민은 미국 건국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종교적 정치적인 다양한 동기가 작용했지만,대부분의 사람들을 움직인 원초적인 힘은 인간의 경제적 욕구,즉 더 나은 물질적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였다.
이주,특히 대륙을 건너는 경우는 많은 돈이 든다.
1700년께 영국에서 미국으로 대서양을 건너는 뱃삯은 당시 영국 1인당 연간 소득의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이처럼 큰 돈을 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특히 새로운 삶을 간절히 바랐던 하층민들에게는 저축도 담보 잡힐 재산도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시장은 인신을 담보로 돈을 대부하는 제도를 마련해 문제를 해결했다.
이주 희망자들이 돈을 빌리는 대가로 대부자를 위해 일정 기간 동안 종(servant)으로 일하는 것이다.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던 식민지의 농장주들은 적극적으로 이 제도를 활용해 인력을 확보했다.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에 있었던 '식모'들처럼 당시 영국에는 하층민 가정의 10대들이 중산층 집에 가서 하인으로 일하는 게 보편화된 관습 중 하나였는데,이것이 자연스럽게 확장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흔히 한시노예(indentured servant)라고 불렀다.
다소 해석하기 어려운 이 명칭은 이주 희망자들과 그들을 미국의 농장주들에게 데려다줄 상인이 작성한 계약서 양식에서 비롯됐다.
이주 희망자는 근무조건 등을 기록한 계약서를 법원에 가서 공증받음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다.
상인 역시 이주민이 자신이 납치된 것이라고 주장할 경우 반박할 근거가 있어야 했다.
따라서 양측은 법원에 가서 계약서에 날인을 한 뒤 서류를 찢어서 한 부를 법원에 보관하고 나머지를 각자 보관했는데,찢은 자국(indent)으로 서류의 진실성을 확인했기 때문에 indentured servant란 말이 생겼다.
결국 계약에 의한 예속관계라는 뜻인 셈이다.
상인은 이주 희망자들을 영국에서 미국으로 실어 나른 뒤 일정한 가격에 미국의 농장주들에게 판다.
농장주들은 약정한 기간 동안 이들을 일꾼으로 부린 뒤 정착금을 주고 해방시켰다.
평균 계약 기간은 4년이었는데 젊거나 기술을 보유한 경우에는 더 좋은 조건을 보장받았다.
에봇 스미스는 독립전쟁 이전까지 유럽에서 미국으로 간 이주민 가운데 70% 정도가 한시노예로 미국 땅을 밟은 것으로 추산한다.
미국 건국의 인적 기초를 마련한 제도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민주사회에서 한시노예제와 같은 제도는 용인되지 않는다.
인신 구속에 대한 계약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의 사각지대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한데,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교통 및 정보통신의 발달로 최근 국가 간 이주는 과거에 비해 매우 용이해졌지만,비자 심사나 이민 규제 등은 이주 희망자들에게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이를 틈타 세계 곳곳에서 불법 이민조직들이 제도적 장벽을 제거해 주는 대가로 이주 희망자들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받거나 이주 후 인신을 구속하고 착취하는 사례가 많이 들려온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역시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한정 받아들일 수는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제도적 장벽은 불가피하고,따라서 완전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혹시라도 제도의 불투명성이나 자의적인 운용이 브로커들이나 불법조직들이 활개 치는 온상을 제공하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21세기 대한민국이 혹시라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불법적인 인신 구속을 하는 일을 방치한 나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주를 한다.
개인 차원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때로는 큰 강물처럼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역사적인 이동도 있다.
유럽에서 북미 대륙으로의 이주가 그 중 하나인데,특히 17세기 초엽부터 미국이 독립을 하는 18세기 말까지 이어진 초기 이민은 미국 건국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종교적 정치적인 다양한 동기가 작용했지만,대부분의 사람들을 움직인 원초적인 힘은 인간의 경제적 욕구,즉 더 나은 물질적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였다.
이주,특히 대륙을 건너는 경우는 많은 돈이 든다.
1700년께 영국에서 미국으로 대서양을 건너는 뱃삯은 당시 영국 1인당 연간 소득의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이처럼 큰 돈을 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특히 새로운 삶을 간절히 바랐던 하층민들에게는 저축도 담보 잡힐 재산도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시장은 인신을 담보로 돈을 대부하는 제도를 마련해 문제를 해결했다.
이주 희망자들이 돈을 빌리는 대가로 대부자를 위해 일정 기간 동안 종(servant)으로 일하는 것이다.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던 식민지의 농장주들은 적극적으로 이 제도를 활용해 인력을 확보했다.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에 있었던 '식모'들처럼 당시 영국에는 하층민 가정의 10대들이 중산층 집에 가서 하인으로 일하는 게 보편화된 관습 중 하나였는데,이것이 자연스럽게 확장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흔히 한시노예(indentured servant)라고 불렀다.
다소 해석하기 어려운 이 명칭은 이주 희망자들과 그들을 미국의 농장주들에게 데려다줄 상인이 작성한 계약서 양식에서 비롯됐다.
이주 희망자는 근무조건 등을 기록한 계약서를 법원에 가서 공증받음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다.
상인 역시 이주민이 자신이 납치된 것이라고 주장할 경우 반박할 근거가 있어야 했다.
따라서 양측은 법원에 가서 계약서에 날인을 한 뒤 서류를 찢어서 한 부를 법원에 보관하고 나머지를 각자 보관했는데,찢은 자국(indent)으로 서류의 진실성을 확인했기 때문에 indentured servant란 말이 생겼다.
결국 계약에 의한 예속관계라는 뜻인 셈이다.
상인은 이주 희망자들을 영국에서 미국으로 실어 나른 뒤 일정한 가격에 미국의 농장주들에게 판다.
농장주들은 약정한 기간 동안 이들을 일꾼으로 부린 뒤 정착금을 주고 해방시켰다.
평균 계약 기간은 4년이었는데 젊거나 기술을 보유한 경우에는 더 좋은 조건을 보장받았다.
에봇 스미스는 독립전쟁 이전까지 유럽에서 미국으로 간 이주민 가운데 70% 정도가 한시노예로 미국 땅을 밟은 것으로 추산한다.
미국 건국의 인적 기초를 마련한 제도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민주사회에서 한시노예제와 같은 제도는 용인되지 않는다.
인신 구속에 대한 계약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의 사각지대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한데,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교통 및 정보통신의 발달로 최근 국가 간 이주는 과거에 비해 매우 용이해졌지만,비자 심사나 이민 규제 등은 이주 희망자들에게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이를 틈타 세계 곳곳에서 불법 이민조직들이 제도적 장벽을 제거해 주는 대가로 이주 희망자들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받거나 이주 후 인신을 구속하고 착취하는 사례가 많이 들려온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역시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한정 받아들일 수는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제도적 장벽은 불가피하고,따라서 완전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혹시라도 제도의 불투명성이나 자의적인 운용이 브로커들이나 불법조직들이 활개 치는 온상을 제공하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21세기 대한민국이 혹시라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불법적인 인신 구속을 하는 일을 방치한 나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