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폐기를 위한 6자회담이 본론에 돌입했다.

정부 당국자는 11일 "북한 핵폐기의 폭과 속도,거리와 연계해 어느 정도 규모의 에너지를 북한에 지원할 것인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5개 핵시설을 포기하는 대가로 수백만t의 중유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 등이 수백만t은커녕 수십만t의 지원도 어렵다고 주장,1조원에 육박하는 비용 분담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북한,핵시설 포기 대가 요구

당초 중국은 북한이 5MW 영변 원자로,핵연료봉 공장,핵 재처리시설,건설 중단된 50MW 원자로 및 200MW 원자로 등 5개 핵시설을 폐쇄하는 대가로 한·미·일·러·중 5개국이 25만t의 중유를 제공하자고 제안했다.

북한의 기대치와 격차가 벌어진 이유는 이번 회담 끝에 채택될 '공동 문건'에 임시적인 의미의 동결이 아니라 폐쇄라는 단어를 쓰기로 합의하면서다.

동결은 수십만t짜리일 수도 있지만 영구적인 포기는 수백만t짜리라는 게 북한 논리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 때 핵개발 중단 대가로 확보한 경수형 원자력 발전소 2기의 건설이 미국의 '일방적인 약속 파기'로 중단된 만큼 보상받겠다는 속셈으로 보인다.

경수로가 완공되는 2003년이면 200만kw/hr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게 북측 주장이다.

200만kw/hr의 전력을 중유로 환산하면 300만t 이상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연간 9억달러 이상이다

◆폭·속도·거리의 문제

북한이 협상 전술 차원에서 '질러보기'를 했다는 관측도 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은 협상할 때마다 실제 가져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요구를 하곤 한다"며 "구체적인 요구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협상 의지가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본격적인 협상은 이제부터이고,간극을 점차 좁혀나갈 수 있다는 긍정적인 분석도 있다.

천영우 수석 대표는 이날 "상응조치의 내용은 북한이 취할 비핵화 조치의 폭과 나아갈 거리,그 조치에 이르기까지 가는 속도에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시설의 가동을 중단하는 것 이상의 조치,즉 시설 해체를 통한 영구한 포기를 이른 시일내 결단 내리면 중유 수십만t 이상의 보상도 가능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일·미·러,비용 분담 난색

그러나 다른 회담 참가국 진영에서는 비관론이 확산됐다.

특히 자국민 납치 문제의 해결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본은 북한의 요구가 터무니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국장은 "9·19공동성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북 문제가 균형을 찾아야 한다"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비관했다.

러시아는 대북 에너지 지원 자체에는 반감이 없지만 비용 분담 문제로 들어가면 소극적이라는 후문이다.

미국도 대북 중유 제공은 실패한 제네바 합의를 답습하는 것이라는 국내 비난 여론을 우려,중유 지원의 양을 늘리기는 부담스럽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회담장 주변에선 대북 중유 제공 비용을 결국 한국이 대부분 떠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베이징=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