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아들 내외가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박숙자씨(61·서울시 불광동).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인 두 손자를 돌보고 살림까지 하느라 늘 바쁘다.

며느리는 아이들 학원비와 공과금을 제외하고 다달이 생활비를 준다.

며느리가 주는 생활비에는 박씨의 용돈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반찬거리와 손자들 간식을 사고 나면 별로 남는 돈도 없고 자신의 병원비라도 쓰게 되면 생활비가 모자란다.

박씨는 "용돈은 생활비와 따로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자식들에게 부담 주는 것 같아 차마 말을 못 하고 서운한 마음뿐"이라고 말한다.

# 2

약사인 김지영씨(40)는 초등학교 2학년짜리 딸을 인근에 사는 시어머니에게 맡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영어학원을 갔다오고 수학 학습지까지 마쳐야 하루 일과가 끝나는 아이가 걱정돼 집으로 전화를 걸 때마다 김씨의 마음이 편치 않다.

시어머니는 "또 전화했냐? 내가 알아서 다 챙기니까 너는 네 일이나 잘 하라"며 매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린다.

김씨는 "시어머니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 자식이니까 궁금해서 전화를 하는 것인데 눈치가 보여 불편하다"고 말한다.


맞벌이를 하며 자녀를 양육하는 부부들에게 할머니는 가장 든든한 지원자다.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머니와 엄마가 함께 자녀를 키우다보면 서로 말못할 고민과 어려움이 생겨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 부모와 양육자 간의 갈등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공동 양육자를 대하는 엄마의 노하우

할머니에게 자녀를 맡긴 엄마라면 할머니의 방식을 존중하고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를 맡겨 놓고 지나치게 전화를 자주 하거나 이것저것 묻는 것은 부모가 할머니의 양육 방법을 못 미더워하거나 불안해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일단 아이를 맡겼다면 할머니를 전폭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할머니가 가정부나 육아 도우미처럼 느끼게 하는 것도 금물이다.

김점옥씨(60·경북 포항시)는 "며느리가 내가 빨아놓은 아이 체육복을 다시 세탁기로 돌리거나 힘들게 해놓은 집안 정리를 자기 스타일대로 바꾸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지적한다.

엄마들은 할머니의 양육법 및 살림법이 자신과 다르더라도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바로잡는 것은 삼가야 한다.

할머니에게 충분한 휴식시간과 감사의 수고비를 드리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김길자씨(61·서울 강북구)는 일하는 딸을 대신해 외손녀를 돌보고 있는데 토요일에도 손녀의 점심을 챙겨야 하는 게 스트레스였다.

특히 주5일 근무제 덕분에 매주 쉬는 사위가 아이는 '나 몰라라' 하고 자기 볼일만 보는 건 정말 참을 수 없었다.

피곤이 쌓인 김씨는 결국 딸과 사위에게 속마음을 털어놨고 이후 주말과 공휴일에는 딸 부부가 전적으로 손녀를 책임진다.

맞벌이 부부들은 할머니가 아이를 완전히 배제하고 주말 스케줄을 짤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여건이 허락되면 친가와 외가의 양육 비중을 비슷하게 조절하는 것도 고려하자.부부가 갑작스런 약속이나 행사로 주말에 집을 비우게 되면 시간제 베이비시터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엄마,적은 시간이라도 알차게 보내야

엄마는 자신이 주 양육자이고 할머니는 조력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진 못하지만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

퇴근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적은 시간이라도 알차게 보내자.

우선 매일 저녁 아이의 숙제와 준비물은 잊지 말고 직접 챙겨 준다.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와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며 친밀감을 쌓는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다고 주말에 아이를 혼자 둬서는 안 된다.

함께 책을 보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등 아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듣고 계획을 세워보면 좋다.

아이의 학교생활과 교유 관계를 알기 위해 학부모회의나 공식적인 학교 행사에 가능하면 참석하는 것이 좋다.

직장일이 바쁘더라도 중요한 안건에 대한 일이나 학기 초에는 할머니를 대신 보내지 말고 엄마가 직접 참석하자.아이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이가 엄마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해 보다 친근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아이가 엄마에게 자신의 어려움이나 요구 사항을 이야기할 때는 잘 들어줘야 한다.

할머니가 아닌 엄마에게 이야기한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바쁘다는 핑계로 할머니에게 미뤄서는 안 된다.

반면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는 점이 미안하고 자책감이 들어서,혹은 아이의 고집을 꺾기가 힘들어서 자녀가 원하는 것을 쉽게 허락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아이는 무엇이든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대신 일단 약속을 하면 꼼꼼히 기억하고 철저하게 지키자.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도움말=웅진교육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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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도 이런 건 주의해 주세요.

①부모의 교육방식을 인정하고 따라가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일관된 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

부모가 금지하는 것은 따라준다.

②부모가 아이를 혼낼 때는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이때 아이의 편을 들면 아이의 잘못을 고치기 힘들다.

그리고 나중에 부모와 조용히 이야기한다.

③아이의 이야기 친구가 돼 준다.

말썽을 피우고 실수를 저지르는 아이에게 부모처럼 혼내지만 말고 부모 대신 편안한 친구로 느끼게 한다.

④아이의 요구를 적절히 들어준다.

아이가 해 달라는 대로 무조건 해 주면 아이는 욕구를 절제할 힘이 부족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