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폐기를 유도하기 위한 6자회담에서 벼랑 끝 전술은 더 이상 북한의 전매특허가 아니었다.

전날 북한이 지난달 베를린 합의 내용을 공개하고 "미국이 합의를 배반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 12일 미국과 한국 대표단은 한발 더 나아가 북한에 영변 원자로 등 5개 핵시설의 가동 중단뿐 아니라 불능화 조치까지 취하라고 촉구했다.

대신 중유와 직접 송전을 섞은 '과감한 에너지 지원'을 보상으로 제시했다.

북한 역시 중유 요구량을 상당폭 낮춘 것으로 알려져 북·미는 합의문 작성을 위해 막판 조율작업을 벌였다.

◆미,"에너지 줄 준비됐다"

한국과 미국 등은 북한이 핵폐기를 위한 '초기단계 이행조치'로서 '폐쇄 및 봉인'보다 높은 단계인 '핵시설 불능화(disabling)'까지 취할 경우 에너지 지원량을 늘려주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장 주변에서는 50만~100만t의 중유 외에 △올해 완공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직접 송전 △미국이 북한 각 지역에 풍력발전소 건설 △한국이 '중대 제안'한 200만kw 송전 계획 등이 거론되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회담 대표는 "우리는 북한 경제,특히 북한 주민들을 위해 에너지를 줄 준비가 됐다"고 밝히고 "북한이 취할 조치는 일정 수준에서 멈춰선 안 되고 비핵화의 여정이 완성되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중유 요구량 축소

그러나 북한이 가동 중단 이상의 조치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기대감은 크지 않다.

북한은 전날까지 핵시설을 포기하는 대가로 막대한 중유를 요구하며 300만~400만t 등 일관되지 않은 주장을 폈으나 이는 의장국인 중국이 합의문 초안에서 북한이 취할 조치를 영구적인 의미의 '폐쇄'로 표기한 것과 무관치 않다.

북한은 이날 협상 과정에서 중유 요구량을 크게 축소하는 데 사실상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북한의 양보라기보다는 '폐쇄'를 '가동 중단'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겠다는 선언일 수도 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 협상 대표단과 평양 사이에는 결재 대기 시간이 길다"며 "한번 가져온 협상 지침을 수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영변 원자로의 가동을 중단하고 검증받으면 미국이 에너지 및 경제 지원을 시작한다"는 지난달 북·미 베를린 합의를 기본으로 협상 중이다.

◆중국 수정안 제시할 듯

이에 따라 공동 문건채택에 성공하더라도 △북한이 핵시설을 폐쇄하는 동시에 5개국이 중유 및 에너지를 제공하며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하는 방안을 포함,관계 정상화 논의를 시작하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참가국 간 협상 경과를 확인한 뒤 합의문서 수정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경우 막판 협의를 거쳐 하루이틀 뒤 타결이 가능하다.

반대로 북한이 중국 측 안을 거부할 경우 사실상 결렬이다.

힐 차관보는 결렬 될 경우 "얼마 후일지는 모르나 정치적 기후에 변화가 생길 것이고 미국과 다른 나라들은 외교 트랙의 가치를 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