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八道 < 코리아랜드컴패니 회장 jpdhongin@hanmail.net >

1980년 1월이었다.

한국산 자동차부품 수출을 위한 민간무역사절단 인솔단장을 맡아 동남아로 출발했다.

순수 국산차 포니가 생산된 지 불과 5년밖에 안 된 시점에 자동차부품 수출에 나섰으니 지금 생각하면 업계와 정부 모두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 그런 용기랄까 배짱이 생겼었는지.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한국이 지구 어느 쪽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던 때였다.

아무튼 상공부와 무역협회,KOTRA,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이 함께 주관해서 구성한 사절단 일행은 순회 전시의 첫 여장(旅裝)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풀었다.

지금이야 다 아는 사실이지만 당시 우리 일행의 눈에 비친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느긋하기 짝이 없었다.

우선 그들은 의식주에 관해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광복 이후 6·25를 거쳐 성장 발전하는 동안 당장 먹을 것,입을 것을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우리에 비해 그들은 태평하기만 했다.

근로자들만 해도 오전 11시40분이면 점심을 먹고 12시께부터는 나무 그늘에 앉아 낮잠을 잤다.

30분쯤 자다가 몸을 뒤척이길래 일어나는가 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얼굴에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나무 그림자 쪽으로 방향만 틀어 계속 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세 시간을 그림자를 따라 몸을 비틀고 나서야 겨우 일어나는 그들을 보며 정말 놀랐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우리는 어떻게든 자동차 부품을 팔아보기 위해 팔방으로 뛰었다.

그리고 1982년엔 공항에 내리자마자 호흡 곤란이 느껴지는 고산국(高山國) 에콰도르를 비롯한 중남미,83년엔 세네갈 등 아프리카 지역으로 자동차 부품 수출을 위한 순회 전시를 이어나갔다.

당시 이처럼 물불 안 가리고 일한 것은 우리에 그치지 않았다.

고(故)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께서는 70년대 말 말레이시아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한 뒤 근로자들의 낮잠 습관을 없애 4년 만에 완공하기로 한 공사를 2년반 만에 끝냈다.

공사 시작 전,점심시간은 낮 12시부터 1시까지로 제한하고 오후 1시부터는 반드시 작업을 시작하겠다는 근로계약서를 자필로 받고,근로자 관리는 말레이시아 정부(내무부)에서 맡아주기로 국왕과 약조했다는 것이다.

그러고서도 처음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으나 정 회장님께서 매일 현장에 들러 낮잠 자는 근로자들에게 한국말로 "점심 먹고 두세 시간씩 자는 것은 동물이나 하는 일"이라고 독려한 결과 버릇이 고쳐졌다고 한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80년대 이 땅의 눈부신 발전은 이처럼 수많은 이가 나라 안팎에서 제 몸 사리는 일 없이 열심히 일한 결과라고 믿는다.

문득 옛생각이 난 것은 장차 후손에게 조금이라도 잘사는 나라를 물려주자면 지금 역시 그 시절처럼 허리끈을 졸라매고 신발끈을 다시 매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