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하고 가만히 있으면 중유를 제공받았던 과거 합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6자회담 참가국들이 엿새간의 마라톤 협상 끝에 13일 채택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 내용에 대해 협상 고위 관계자가 자평한 말이다.

특히 보상 정도를 북한이 핵 폐기를 이행하는 범위와 속도에 연계한 것이 1994년 제네바 합의와 다르다.

또 지난달 북·미가 베를린 회동에서 합의한 것은 핵시설의 폐쇄·봉인까지였으나 합의문은 북한의 전면적인 핵 프로그램 신고와 핵시설 불능화 단계까지 제시했다.

"목표치 이상을 얻었다"는 게 우리 대표단의 평가다.



◆상응 조치는 '성과급 제도'


협상 고위 관계자는 "상응 조치의 핵심은 성과급 제도"라고 말했다.

북한은 1994년 미국과 제네바 합의를 맺고 5개 핵시설을 폐쇄·봉인하는 '액션'과 "핵을 폐기하겠다"는 '약속'만으로 7년간 매년 50만t씩 중유를 제공받았다.

당시 합의가 정적인 구조였다면 이번에는 동적인 구조다.

폐쇄·봉인의 대가로는 중유 5만t밖에 가져가지 못한다.

갖고 있는 핵 프로그램을 모두 신고하고 영변 원자로와 핵 재처리시설을 포함한 핵시설 전체를 영원히 못쓰게 만드는 불능화 조치까지 취해야 중유 100만t 상당의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시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합의문은 '신고와 불능화를 포함한 다음 단계 기간 중 지원을 제공한다'고 적시,북한의 이행 속도가 빠를수록 보상 집행 속도도 빨라진다는 원칙을 담았다.



◆동등 분담 원칙 합의


한때 대북 지원 비용을 한국이 떠안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으나 합의문은 한·미·러·중 4개국이 "평등과 형평의 원칙에 따라 분담한다"고 명시했다.

한국 대표단이 분담 원칙을 강하게 요구,중국의 초안을 뒤집으며 관철시켰다는 후문이다.

대북 지원을 끝내 거부한 일본이 빠진 대신 "일본이 자국의 우려 사항이 다뤄지는 대로 동일한 원칙에 따라 참여하기를 기대한다"는 추가 조항을 달았다.

협상 고위 당국자는 "일본이 국내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당장 참여하지 못했지만 동참할 명분이 생길 수 있게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인 납치 문제 등 북·일 간 양자 현안은 한 달 내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을 설치해 해결을 모색한다.


◆지원 형식 다원화



합의문에는 5개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가 명시돼 있지 않다.

핵신고와 불능화의 대가로 '중유 100만t 상당의 에너지·경제·인도적 지원'이라고 정했을 뿐이다.

제네바 합의를 답습한다는 국내 비난 여론을 우려,중유 제공에 부정적이던 미국 등의 입장을 고려했다.

미국은 "북한 주민들이 직접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에너지를 주겠다"는 원칙 아래 풍력발전소 건설 등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 송전,식량 지원 등도 가능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6자회담에서 진전이 있을 경우 북한에 80억달러의 채무를 탕감해 주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비용을 분담한다는 원칙은 있지만 각국은 각자의 지역 발전 계획을 고려하고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지원 방법을 찾을 것으로 보여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베이징=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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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풀이

▷동결(Freezing)=핵시설 가동 중단을 의미한다. 재가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장 기초적인 단계.

▷폐쇄(Shut-Down)=동결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초치로 폐쇄되면 인력 이동이 완전 통제된다.

▷불능화(Disabling)=가동 중단이 아니라 핵 시설의 부품을 아예 제거,가동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

▷CVID=Complete,Verifiable,Irreversible,Dismantlement의 줄임말이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 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