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6자회담은 한·미·중·일·러 입장에선 북한의 핵 폐기 의지를,북한 입장에선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폐 의지를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공동 문건 초안은 회담 첫날부터 나왔으나 이를 채택하기 위한 여정은 길었다. 닷새 동안 북미가 서로의 의지를 시험한 끝에 결국 초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합의에 도달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어려운 과제를 이행하기 위한 첫단추를 꿰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않다는 평가다.

◆ 핵폐기 첫단추 꿸 듯

13일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 6자회담 공동 문건은 서로가 초기 단계에서 취할 행동만을 명시하고 있다. 초안을 바탕으로 한다면 공동 문건 발표일부터 60일 내 영변 원자로,핵재처리시설,핵연료봉공장,건설 중단된 50·200MW 원자로 등 북한 내 5개 핵시설이 폐쇄된다. 동시에 한국과 미국 등 5개국이 에너지 지원을 시작한다. 이후 구체적인 일정은 실무 그룹에서 결정된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실무 그룹에서는 북한의 핵시설 해체~핵프로그램 신고~핵무기 폐기에 이르는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논의한다.

이번 회담에서 한국과 미국 등은 북한의 핵폐기가 진행되는 수준에 따라 직접 송전과 발전소 건설 등 과감한 수준의 에너지 지원을 제시했다. 이 문제는 대북 에너지 및 경제지원을 위한 실무그룹에서 추진한다.

◆ 깊은 북·미 간 불신의 골

이번 6자회담은 당초 3~4일이면 끝날 것으로 전망됐을 만큼 낙관적이었다.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쳤고 지난달 북·미 간 베를린 회동에서 구체적인 합의 내용이 결정돼 있었던 만큼 한·미 정상이 조기 타결을 예상하고 지난 9일 축하 메시지까지 준비했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회담이 막상 시작되자 북·미 간 불신의 골은 역시 깊었다. 미국이 공동 문안에 핵폐기를 위한 북한의 행동 계획을 담을 것을 요구하자 북한은 "미국은 돌이킬 수 없는 적대시 정책의 철폐를 보장해야 한다"고 맞섰다. 특히 북한은 미국의 군사 위협 중단이 문건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때 북한이 핵폐기 대가로 중유 수백만t 이상을 요구,협상이 결렬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일본이 납치 문제 해결을 고집한 것도 타결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 모든 문제는 북·미 관계 정상화,북·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실무그룹을 각각 설치해 해결을 모색하게 된다.

◆ 남북 대화 재개 전망

완전한 핵폐기가 담보되지 않았지만 북한의 핵시설 폐쇄 합의로 6자회담이 타결될 가능성이 높아짐으로써 '한반도 평화지수'는 높아지게 됐다. 남북,북·미 관계의 개선과 더불어 국내 정치 환경의 변화도 예상된다.

정부는 일방적 '퍼주기'라는 비난을 면할 수 있게 된 만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전면 중단된 남북 대화의 재개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핵시설) 동결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일단 핵폐기까지의 시작은 거기서부터이니 의미가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베이징=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