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斗植 <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dskim@shinkim.com >

가수 겸 연예기획자인 박진영이 "한류에서 민족주의 성향을 제거해야 한다"고 발언해 연예계의 민족주의 논란을 촉발했다.

박씨의 발언에 대해 연예인에게도 국적은 필요하다느니,한류와 민족주의를 연결한 것은 부당하다느니 하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박진영은 한류를 국경을 넘어선 자연스러운 문화적 소통현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여기에 '우리 민족 최고'라는 시각을 공공연히 드러내 오히려 반(反)한류 기류가 형성되고 있음을 우려한 것으로 이해된다.

요즘 한국사회만큼 '민족''민족주의'란 말이 넘쳐나는 데도 없는 것 같다.

문학과 역사에서의 한 사조로서만 머물지 않고,정치와 법률에서도 '정의'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1960년대 국민교육헌장에서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부르짖은 바 있고,최근에도 '민족'의 정통성 확립,반'민족' 행위 처벌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들이 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2002년 월드컵에서 응원 열기가 거리를 붉은색으로 물들인 것도,평소 국내 K리그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다가 한·일 국가 대항전에는 온 국민이 관심을 갖는 것도,한국민의 넘쳐 흐르는 민족주의적 열정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원래 '민족(民族)'이란 말은 일본이 만든 용어라고 한다.

이 말이 빈번히 사용된 것도 일제강점기 때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일본보다는 오히려 한국 사람들의 사상체계에 민족주의가 더 깊게 뿌리박고 있다.

아마도 일제시대와 남북 분단 상황을 겪으면서 '한민족'이란 공동체 개념 위에 국가의 독립과 통일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고,이를 위해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워 온 결과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민족주의가 넘치면 오히려 국가 발전을 저해한다.

특히 같은 언어,같은 핏줄을 가진 단일민족이란 생각은 강한 외세에는 유연성 없이 지나치게 방어적이 될 수 있고,약한 상대에게는 근거 없는 우월의식 행태로 나타나기 쉽다.

불필요하게 민족을 강조하면 타민족의 반발을 사 고립될 수 있다.

사실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한국의 드라마나 대중음악,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일이다.

그런데도 아시아 연예시장에서 한국 연예인들이 거둔 개인적인 성공을 마치 국가대표 운동선수가 승리한 것처럼 의미를 부여하고,언론까지 나서서 우리 드라마가 중국 가정의 안방을 점령했다느니,한국 대중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느니 운운하는 것은 문제다.

이러한 태도는 한류의 문화적 순수성을 훼손하고 오히려 한류의 확산동력 그 자체를 소진시킬 우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