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30분 도쿄 번화가 아카사카.저녁식사를 마치고 큰 길로 나오자 빈 택시들이 50m 정도 줄지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송하승 우림건설 도쿄 지사장은 샐러리맨들 사이에 저녁 식사 후 술 한 잔 더 하는 2차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통신 및 전자기기회사인 NEC에서 일본게이단렌 산하 경제홍보센터에 파견된 시키모리 다다시 주임연구원은 가족과 한 달에 한 번 하던 외식을 얼마 전 두 달에 한 번으로 줄였다.

경기가 60개월 연속 확장을 지속하고 있지만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선 찬바람이 분다.

경제의 한 축인 소비가 꽁꽁 얼어붙었다.

심리적·구조적 요인이 겹쳐 있다.

1990년대 불황의 아픔을 겪은 소비자들은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압박과 불안감에 지갑을 열지 못한다.

기업들은 인력을 줄이고 임금을 깎아 샐러리맨들이 쓸 수 있는 여윳돈이 거의 없다.

제대로 월급을 받는 기업의 정규직 인력은 작년 1~3월 기준 3340만명.5년 전에 비해 8%,290만명이나 줄었다.

빈 자리를 파트타이머(주 35시간 이하 근무)나 프리터(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젊은이)로 채웠다.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들의 소비가 정규직을 따라갈 수는 없다.

정규직들의 급여마저 깎여 작년 7~9월 기준 기업소득 중 근로자들에게 돌아가는 노동분배율이 61.3%로 5년 전보다 8.9%포인트 낮아졌다.

후생노동성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종업원 5명이 넘는 기업의 물가를 감안한 실질 급여(잔업수당 포함)는 지난해 월평균 33만5522엔으로 전년보다 0.5% 줄었다.

그로 인해 작년 12월 개인소비는 1년 전보다 1.9% 감소했다.

12개월 연속 부진을 면치 못했다.

대도시를 벗어나면 소비 부진은 더 심각하다.

가네코 히데도시 마이니치신문 논설위원은 "후쿠오카의 어느 작은 마을에선 눈 속을 걷는 데 필요한 장화 가게 외의 점포는 거의 다 문을 닫았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고령화도 소비제약요인이다.

2005년 65세 이상 인구비율은 20.1%.이 비율이 2050년 42%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고령인구 증가는 소비병목 현상을 고착시킬 수 있다.

조금씩 나아질 조짐은 보인다.

세계 최대 여행사 중의 하나인 JTB(일본교통공사)의 올해 해외여행 패키지상품에 대한 수요는 작년보다 4.4% 늘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2차대전 후 태어난 단카이 세대(團塊·일본판 베이비붐 세대)의 대규모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수요가 늘 것이라는 전제에서다.

하지만 이들의 소비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경기회복을 지속시키기 위해 소비를 부추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정규직 고용을 늘리고 임금도 올려줘야 한다는 압력이 기업들을 누르고 있다.

렌고(노동조합총연합회)도 가세했다.

변화는 나타나고 있다.

채용종합잡지인 리쿠르트 12월호(2006년)에 실린 정규직모집 광고는 전년 12월보다 2.8% 늘었다.

반면 파트타이머나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는 5.9% 줄었다.

메이지생명보험은 비용 절감을 위해 3200명의 파견사원을 쓰고 있다.

이 중 3년 이상 된 사원들에 한해 일정한 시험을 합격하면 4월께 정규직으로 돌릴 방침이다.

유통회사들은 깐깐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븐앤드아이홀딩스는 저출산 고령화 추세에 맞춰 한 사람이 쓰거나 먹을 수 있을 만큼 용량을 최소화한 1인용 제품 개발을 확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 전망이 밝지는 않다.

후카오 미쓰히로 일본경제연구센터 이사장은 "단카이 세대가 퇴직하면서 젊은 사원들의 고용이 늘어나지만 그들의 급여는 은퇴자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며 "한 사람 한 사람의 급여가 오르더라도 전체 근로자들의 총 보수는 증가하기 어려워 소비 확대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