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역사소설 '유림'으로 '유교적 자본주의' 주창한 최인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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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유교라고 하면 낡고 고리타분한 것,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얼마 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역설적인 제목의 책이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과연 그럴까. 작가 최인호씨(62)는 최근 완간한 역사대하소설 '유림'(전6권)을 통해 이를 정면으로 부인하며 '공자가 되살아나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한다.
'유림'은 2005년 7월 1~3권이 나온 이후 4·5권(2006년 6월)과 6권(2007년 1월)을 합쳐 80만부 이상이나 팔려나갔다. 원고지 8000장짜리 대하역사소설이,그것도 유림의 역사를 소재로 한 '딱딱한' 작품이 1년반 만에 100만부 가까이 팔린 것은 불황에 시달리는 출판계에선 파격적이다. 최씨가 소설을 쓰기 위해 참고한 책만도 300권이 넘는다. 그래선지 '유림'을 산 사람들도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고급독자'들이다. 출판사(열림원)에는 '유림' 덕분에 "유교를 새롭게 보게 됐다"며 감사의 전화가 걸려 올 정도다.
서울 한남동의 집필실에서 만난 최씨는 "유교는 버려야 할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새롭게 다듬어야 할 우리 민족의 자산임을 독자들이 인정한 것"이라며 "단순한 듯 보이는 유교의 미덕과 지혜야말로 21세기 경제 정치 사회 교육 등 여러 문제를 푸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유림'의 반응이 예상외로 뜨겁습니다.
"아직도 '유교'를 낡은 것으로만 여기고 그 속에 담겨진 진정한 가치는 눈여겨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청렴결백하고,자기 직분에 충실하고,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같은 유교의 기본 가르침은 그 자체로 훌륭한 덕목입니다. 저는 '유림'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치에 주목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이유사태나 바다이야기 같은 부정과 비리가 판을 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유교의 기본 덕목들을 무시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요. 유교는 절대로 낡은 유산이 아니에요. 오히려 물려받아야 할 위대한 유산이지요. 눈 밝은 독자들이 그것을 아는 것 같아요."
-현대사회의 혼란을 극복할 대안으로 '유교적 자본주의'를 거론하셨는데요.
"'유교적 자본주의'는 서구의 미래학자 허먼 칸(1922~1983)이 처음 언급한 개념입니다. '현금자동지급기'와 '초고속 열차''위성항법장치(GPS)' 등의 출현을 족집게처럼 맞혔던 칸은 21세기가 되면 서구적 자본주의는 몰락하고 유교적 자본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정부와 기업 간의 치밀한 관계,교육을 중시하는 동양적 사고방식,가족과 향토를 중시하는 대가족 개념,그리고 강한 유교적 문화의 동질감 등이 핵심입니다. 물질만능주의와 부익부 빈익빈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서구적 자본주의의 폐해를 뛰어넘는 신경제이론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는 맹자가 주창했던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 즉 '경제가 안정되지 않으면 사회 안정도 없다','생산이 없는 곳에 민심도 없다'는 사상과 일맥상통합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경제사상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유교에서는 오래전부터 경제를 자유로운 방목과 같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정치논리에 따라 경제를 흔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요즘 관점에서 얘기한다면 규제를 최소화한 가운데 이뤄지는 기업과 정부의 조화로운 화합을 이상적인 형태로 생각한 것이지요. 어떤 면에서 경제인들은 나라를 벌어먹이는 반면 정치인들은 무위도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사회에선 기업과 정부는 물론이고 노·사 간에도 큰 갈등이 존재합니다.
"노동조합이든 시민단체든 조직이 커지고 힘이 세지면 자연히 권력화됩니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대표적인 경우겠죠.하지만 힘이 세지고 권력화될수록 필요한 것이 엄격한 자기도덕률입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힘과 요구는 강하지만 스스로의 소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노·사 간 같은 식구라는 공동체 의식이 부족한 것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역지사지'라는 말처럼 서로의 처지에 서서 조금만 입장을 바꿔보면 되는데 말입니다."
-'유림'에도 개혁에 대한 부분이 있더군요. 요즘 세태와 관련이 있습니까.
"개혁에 대한 규정부터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칭기즈칸의 참모였던 야율초재가 간파했듯 한 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한 가지의 해로운 일을 제거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개혁이라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국민을 번거롭게 만드는 것보다는 원래 있던 제도 가운데서 해로운 일,필요없는 일을 제거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의미죠."
-개혁을 추진할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합니까.
"중요한 것은 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모순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은 자칫 피곤한 일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방한했던 미식축구 선수 하인즈 워드를 보면서 저는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의로운 개인 한 사람이 장차 큰 물결이 될 수 있음을 그를 보며 느꼈습니다. 워드에게 무슨 정치적 의도나 목적이 있었겠습니까. 백마디 천마디의 말보다 가식 없는 행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음을 그는 보여 주었습니다. 느려 보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요."
-유교적 가치관을 현대에 살려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유교의 기본 덕목 중 하나인 효(孝)를 예로 들어 볼까요. 누구나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성장하지만 우리 주위에서 막상 늙은 부모님을 정성껏 봉양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진정한 효의 기쁨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효행이든 선행이든 하다보면 스스로에게 좋다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예를 갖추면 좋아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입니다. 이런 생각이나 논리를 여러 사람들에게 심어줘야 합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
약력=△1945년 서울 출생 △서울고 2학년 때인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 입선 △1964년 연세대학교 영문과 입학 △1967년 '견습환자'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사상계 신인문학상 수상 △1971년 '별들의 고향''타인의 방' 출간 △1974년 '바보들의 행진''맨발의 세계일주' 출간 △1982년 '깊고 푸른 밤'으로 이상문학상 수상.'적도의 꽃' 출간 △1986년 장편 '잃어버린 왕국' 출간 △1993년 '길 없는 길' 출간 △1995년 '왕도의 비밀' 출간 △2000년 '상도' 출간 △2003년 '해신' 출간 △2007년 '유림' 출간
'유림'은 2005년 7월 1~3권이 나온 이후 4·5권(2006년 6월)과 6권(2007년 1월)을 합쳐 80만부 이상이나 팔려나갔다. 원고지 8000장짜리 대하역사소설이,그것도 유림의 역사를 소재로 한 '딱딱한' 작품이 1년반 만에 100만부 가까이 팔린 것은 불황에 시달리는 출판계에선 파격적이다. 최씨가 소설을 쓰기 위해 참고한 책만도 300권이 넘는다. 그래선지 '유림'을 산 사람들도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고급독자'들이다. 출판사(열림원)에는 '유림' 덕분에 "유교를 새롭게 보게 됐다"며 감사의 전화가 걸려 올 정도다.
서울 한남동의 집필실에서 만난 최씨는 "유교는 버려야 할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새롭게 다듬어야 할 우리 민족의 자산임을 독자들이 인정한 것"이라며 "단순한 듯 보이는 유교의 미덕과 지혜야말로 21세기 경제 정치 사회 교육 등 여러 문제를 푸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유림'의 반응이 예상외로 뜨겁습니다.
"아직도 '유교'를 낡은 것으로만 여기고 그 속에 담겨진 진정한 가치는 눈여겨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청렴결백하고,자기 직분에 충실하고,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같은 유교의 기본 가르침은 그 자체로 훌륭한 덕목입니다. 저는 '유림'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치에 주목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이유사태나 바다이야기 같은 부정과 비리가 판을 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유교의 기본 덕목들을 무시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요. 유교는 절대로 낡은 유산이 아니에요. 오히려 물려받아야 할 위대한 유산이지요. 눈 밝은 독자들이 그것을 아는 것 같아요."
-현대사회의 혼란을 극복할 대안으로 '유교적 자본주의'를 거론하셨는데요.
"'유교적 자본주의'는 서구의 미래학자 허먼 칸(1922~1983)이 처음 언급한 개념입니다. '현금자동지급기'와 '초고속 열차''위성항법장치(GPS)' 등의 출현을 족집게처럼 맞혔던 칸은 21세기가 되면 서구적 자본주의는 몰락하고 유교적 자본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정부와 기업 간의 치밀한 관계,교육을 중시하는 동양적 사고방식,가족과 향토를 중시하는 대가족 개념,그리고 강한 유교적 문화의 동질감 등이 핵심입니다. 물질만능주의와 부익부 빈익빈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서구적 자본주의의 폐해를 뛰어넘는 신경제이론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는 맹자가 주창했던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 즉 '경제가 안정되지 않으면 사회 안정도 없다','생산이 없는 곳에 민심도 없다'는 사상과 일맥상통합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경제사상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유교에서는 오래전부터 경제를 자유로운 방목과 같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정치논리에 따라 경제를 흔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습니다. 요즘 관점에서 얘기한다면 규제를 최소화한 가운데 이뤄지는 기업과 정부의 조화로운 화합을 이상적인 형태로 생각한 것이지요. 어떤 면에서 경제인들은 나라를 벌어먹이는 반면 정치인들은 무위도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사회에선 기업과 정부는 물론이고 노·사 간에도 큰 갈등이 존재합니다.
"노동조합이든 시민단체든 조직이 커지고 힘이 세지면 자연히 권력화됩니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대표적인 경우겠죠.하지만 힘이 세지고 권력화될수록 필요한 것이 엄격한 자기도덕률입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힘과 요구는 강하지만 스스로의 소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노·사 간 같은 식구라는 공동체 의식이 부족한 것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역지사지'라는 말처럼 서로의 처지에 서서 조금만 입장을 바꿔보면 되는데 말입니다."
-'유림'에도 개혁에 대한 부분이 있더군요. 요즘 세태와 관련이 있습니까.
"개혁에 대한 규정부터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칭기즈칸의 참모였던 야율초재가 간파했듯 한 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한 가지의 해로운 일을 제거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개혁이라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국민을 번거롭게 만드는 것보다는 원래 있던 제도 가운데서 해로운 일,필요없는 일을 제거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의미죠."
-개혁을 추진할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합니까.
"중요한 것은 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모순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은 자칫 피곤한 일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방한했던 미식축구 선수 하인즈 워드를 보면서 저는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의로운 개인 한 사람이 장차 큰 물결이 될 수 있음을 그를 보며 느꼈습니다. 워드에게 무슨 정치적 의도나 목적이 있었겠습니까. 백마디 천마디의 말보다 가식 없는 행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음을 그는 보여 주었습니다. 느려 보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요."
-유교적 가치관을 현대에 살려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유교의 기본 덕목 중 하나인 효(孝)를 예로 들어 볼까요. 누구나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성장하지만 우리 주위에서 막상 늙은 부모님을 정성껏 봉양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진정한 효의 기쁨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효행이든 선행이든 하다보면 스스로에게 좋다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예를 갖추면 좋아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입니다. 이런 생각이나 논리를 여러 사람들에게 심어줘야 합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
약력=△1945년 서울 출생 △서울고 2학년 때인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 입선 △1964년 연세대학교 영문과 입학 △1967년 '견습환자'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사상계 신인문학상 수상 △1971년 '별들의 고향''타인의 방' 출간 △1974년 '바보들의 행진''맨발의 세계일주' 출간 △1982년 '깊고 푸른 밤'으로 이상문학상 수상.'적도의 꽃' 출간 △1986년 장편 '잃어버린 왕국' 출간 △1993년 '길 없는 길' 출간 △1995년 '왕도의 비밀' 출간 △2000년 '상도' 출간 △2003년 '해신' 출간 △2007년 '유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