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용 시인(62)의 연작시 '도장골 시편'이 지난해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 가운데 가장 좋은 시로 뽑혔다.

도서출판 '작가'는 15일 시인·평론가·편집인 등 15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발표된 시 중 가장 좋은 시를 설문조사한 결과 김씨의 '도장골 시편'이 20회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고 밝히고 이 시를 포함,추천시 76편과 시조 13편을 엮은 '2007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를 출간했다.

다음은 김신용 시인의 '도장골 시편-넝쿨의 힘'.

'집 앞,언덕배기에 서 있는 감나무에 호박 한 덩이가 열렸다

언덕 밑 밭 둔덕에 심어 놓았던 호박의 넝쿨이,여름 내내 기어올라 가지에 매달아 놓은 것

잎이 무성할 때는 눈에 잘 띄지도 않더니

잎 지고 나니,등걸에 끈질기게 뻗어 오른 넝쿨의 궤적이 힘줄처럼 도드라져 보인다

무거운 짐 지고 비계(飛階)를 오르느라 힘겨웠겠다.

저 넝쿨

(중략)

모랫바람 불어,모래 무덤이 생겼다 스러지고 스러졌다 생기는 사막을 걸어 간 발자국들이

비단길을 만들었듯이

그 길이,누란을 건설했듯이

다만 길이 있었기에 뻗어 가,저렇게 허공 중에 열매를 매달아 놓았을 것이다.

저 넝쿨

가을이 와,자신은 마른 새끼줄처럼 쇠잔해져 가면서도

그 끈질긴 집념의 집요한 포복으로,불가능이라는 것의 등짝에

마치 달인 듯,둥그렇게 호박 한 덩이를 떠올려 놓았을 것이다

오늘,조심스레 사다리 놓고 올라 가,저 호박을 따리

오래도록 옹기그릇에 받쳐 방에 장식해두리,저 기어가는 것들의 힘.'


('창작과비평' 2006년 봄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