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못지않은 풍류거사로 알려진 토정(土亭) 이지함은 사주팔자를 잘 보았고 앞을 내다보는 예언가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자식의 사주팔자가 시원치 않자,점이나 치며 끼니를 때우라는 아비의 배려에서 '토정비결'을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우스갯소리일 게다.

그후 토정비결은 우리 조상들이 새해 벽두가 되면 한 해의 신수(身數)를 점치는 교본이 됐다.

선비들은 주역을 바탕으로 괘를 뽑아 자신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예측하곤 했으나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느 시대 누구를 막론하고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불안은 있게 마련이다.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불안감은 더욱 커지는데,미리 대비하는 수단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점(占)이다.

그래서 점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점술도 별점 꿈해몽 내장점 등 각양각색으로 돈을 받고서 운세를 봐주는 일이 흔했다.

우리의 경우는 한국전쟁 당시 부산의 영도다리 옆 노상에서 맹인 수십 명이 전문적인 점집을 개업하면서 전국으로 확산됐다고 한다.

이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일이 꼬이기만 하면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나선다.

그것도 여러 군데를 다니면서 선택이나 판단을 이들에게서 구하려 한다.

가히 '점보는 사회'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하다.

전국의 무속인과 역술인이 60여만명을 헤아리고,점에 관련된 비용이 영화산업과 맞먹는 2조원에 이른다는 통계도 이 같은 세태를 꼬집는 듯하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무속인들을 찾아 다소나마 위안을 갖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들에게 의지하면서 점괘에 나타나는 신수를 운명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실제 합리적인 판단력이 상실돼 적잖은 폐해가 빈발하고 있어서다.

설을 앞두고 점집이 북적인다고 한다.

이 곳은 잠시 고민을 털어놓는 장소는 될지언정 문제의 해결장소는 결코 아니다.

자신의 운명결정권이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는 너무도 자명한 사실을 상기했으면 한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