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정부에서 고어텍스 원단으로 등산복을 만들어 코오롱스포츠에 납품하는 필립상사는 요즘 나이키,컬럼비아스포츠 등 전 세계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들로부터 밀려드는 주문을 다 소화하지 못해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한 벌에 50만원이 넘는 고급 등산 재킷 제작에만 쓰이는 '웰딩 봉제술(바늘과 실 없이 옷감을 용접하듯 접착시키는 기술)'을 가진 이 회사에 봉제업이 사양 산업이라는 것은 '남의 나라 얘기'다.

고가 의류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부산의 'JN패션'도 마찬가지다.

5년 전부터 영국 '닥스' 브랜드의 100만원대 트렌치 코트를 전담 생산,일감이 넘치자 1970년대 봉제산업 전성기 시절 근무했던 주부사원들을 재고용해 라인을 완전 가동하고 있다.

닥스를 국내에 라이선스 판매하는 LG패션 관계자는 "중국 베트남으로 건너간 봉제회사에 맡겨서는 영국 본사에서 요구하는 품질 수준을 맞출 수 없어 전량을 국내 봉제업체들에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저임 노동력에 의존하는 사양산업으로 인식됐던 봉제산업이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상당수 업체들이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인건비가 싼 곳으로 빠져 나가는 등 긴 구조조정의 터널을 지나온 끝에 '고품질'과 '스피드'를 기반으로 고(高)부가가치 산업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격랑 속에서도 한국에 남아 경쟁력을 인정받은 봉제회사들에는 국내외 유명 패션업체들의 일감이 쏟아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봉제산업의 업체 수와 고용 인원은 줄었지만 생산액은 1980년대 후반의 '3저(低) 호황기'를 능가하고 있다.

국내 봉제업체 수(5인 이상 사업장 기준)는 2002년(9361개)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2005년 말 8265개까지 줄었다.

하지만 1998년 6조9278억원으로까지 곤두박질쳤던 봉제업 총 생산액은 2005년 12조719억원까지 증가했다.

작년엔 13조원에 이른 것으로 섬유산업연합회는 추정했다.

봉제업체들의 종업원 1인당 연간 부가가치 생산액도 2000년 2900만원에서 2005년에는 5400만원으로 5년 새 배 가까이 올랐다.

이처럼 봉제산업이 '턴 어라운드'한 것은 제일모직 FnC코오롱 등 국내 업체는 물론이고,'닥스' '빨질레리' 등 외국 유명 브랜드들까지 고가 제품군 생산을 국내 봉제업체들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물량을 맡은 형원산업 가원실업 등은 최근 경영 안정에 힘입어 서울 화곡동 등지의 쪽방에서 구로디지털단지,성남공단 등의 아파트형 공장으로 생산시설을 옮기고 있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면서 예전과 같은 계획 생산이 불가능해진 패션업체들이 반응 생산으로 대거 돌아선 것도 봉제산업의 부활 속도를 높이고 있다.

2005년 여름 인도네시아에서 3만벌의 겨울 코트를 만들어놨던 A기업은 이상 고온으로 소진율이 30%에 불과,재고로 몸살을 앓은 뒤부터는 코트 계획 생산 물량을 5000벌로 줄였다.

나머지는 국내 봉제업체에 내는 '스폿 주문(납기가 1주일 미만인 일회성 주문)'으로 소화하고 있다.

섬산련은 지난해 국내 패션업체들의 내수 의류 반응 생산 비중은 54%로 1998년(10%대)에 비해 5배가량 커졌다고 밝혔다.

조제후 동대문의류봉제협회 관리본부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물량이 없어 명절이면 일주일씩 노는 곳이 대부분이었지만 지난해부터는 설 당일 하루를 제외하고는 재봉틀이 계속 돌아가는 공장이 많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