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휴대폰 제조업체는 '세계 최초'란 말을 좋아한다. '세계 최초 100만 화소폰' '세계에서 가장 얇은 휴대폰' 등. 기술력을 자랑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웃지 못할 '세계 최초' 해프닝도 여러 번 일어났다. 하루가 멀다하고 '최초'가 나오다 보니 업체들은 누가 먼저 보도자료를 내느냐를 놓고도 신경전을 벌였다. "제품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보도자료부터 뿌렸다" "경쟁사가 물타기했다. 너무 아깝다"는 촌극이 빚어지기 일쑤였다.

그런 휴대폰 업계가 요즘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 새삼 주목거리다. '세계 최초''프리미엄'을 좇아 위쪽을 중시해온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드디어 '단순 기능'을 중시하는 아래쪽도 내려다 보기 시작한 것이다.

안승권 LG전자 모바일커뮤니케이션 부문장은 지난주 끝난 스페인 '3GSM 세계회의'에서 "팔리지 않는 제품은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 고객에게 '가치'를 주지 않는 '세계 최초'에 더이상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다분히 삼성전자를 겨냥한 뉘앙스였지만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였다.

한국 휴대폰을 이끄는 삼성전자의 최지성 사장도 표현방식은 달랐지만 시장과 소비자를 강조했다. 프리미엄 전략만을 고수해온 마케팅에서 벗어나 시장이 원하는 전략도 구사해 보겠다는 최 사장의 발언은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두 CEO의 말은 당연해 보이면서도 적잖은 환영을 받았다. 사실 시장에선 "이기능 저기능 다 집어넣은 휴대폰 말고 사양은 낮지만 저렴하고 꼭 필요한 기능만 있는 휴대폰을 구할 수 없느냐"는 소비자의 요구가 적지 않았다. 전 세계 휴대폰 시장 중 유일하게 성장 중인 중남미 중동 동남아를 공략하기 위해서도 소득수준에 맞는 기능 다이어트가 절실하다는 지적도 많다. 그것이 해외시장만의 일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왜 한국에선 휴대폰이 이렇게 비싸야 하는가'라는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전기밥솥처럼 일상 가전제품이 되어가는 휴대폰. 프리미엄 제품이 앞에서 끌고 실속제품이 뒤에서 미는 변화된 마케팅이 절실하다. '세계 최초' 못지않게 소비자의 선택권이 중요한 이유다.

김현지 IT부 기자 n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