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제산업 '부활의 노래'] 1인당 부가가치 5400만원‥5년새 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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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계천 인근 창신동에 자리 잡은 여성 캐주얼 의류 봉제업체 신안산업은 지난해 두 번의 특수를 누렸다.
먼저 지난해 5월 이른 무더위가 밀어닥쳐 패션업체들이 중국 동남아 등 해외에서 계획 생산해 둔 여름옷이 일찍 동났을 때다.
나산 예츠,신원 베스띠벨리 등 여성복 브랜드 업체들은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이 회사에 '스폿 주문(납기 7일 미만의 일회성 주문)'을 쏟아냈다.
11월에도 주문이 폭주했다.
한 해 전 겨울철 이상 고온으로 코트가 안 팔려 몸살을 앓았던 패션업체들이 해외 계획 생산분을 줄이고,시즌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반응 생산(quick response)'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매장에서 잘 팔리는 제품의 추가 생산 물량이 이 회사로 떨어졌다.
조석묵 신안산업 사장은 "해외에서 만들 경우 운송에만 2~3주가 걸리기 때문에 반응 생산이 불가능하다"며 "변덕스런 날씨 덕에 청계천 일대 봉제업체들의 일감이 부쩍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기상 이변이 속출하면서 내수용 의류 생산분이 국내로 'U턴'하고 있다.
패션업체들의 반응 생산이 늘어나면서 수출길이 막혀 어려움을 겪던 청계천 일대의 봉제공장들을 살려내고 있는 것.1970년대 평화·통일·동화시장을 축으로 청계천 일대에 모여 있던 2000여개의 봉제 공장은 한때 한국 전체 의류 수출 물량의 70%를 소화할 만큼 번창했다.
이곳의 공장들은 동대문 시장에서 원·부자재 일체를 공급받아 다수의 저임금·장시간 노동력을 결집시켜 빠르게 물량을 쏟아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1980년대 말 노동운동이 격화되고,중국의 경제 개발이 시작되면서 수출길이 막혀 지금은 500여곳의 봉제공장만 살아 남아 있다.
그렇지만 20~30년간의 노하우에서 비롯된 '빠르고 정확한' 작업은 여전히 청계천 봉제공장의 강점이다.
국내 봉제업계가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쳐 '소수 정예'만이 살아남았음은 봉제업체들의 종업원 1인당 연간 부가가치생산액이 2000년 2900만원에서 2005년 5400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오른 점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상욱 신원 생산부장은 "지난해 말 두꺼운 코트 대신 한참 잘 팔리는 니트 카디건 3000장을 공장 세 곳에 나눠 발주했는데 3일 만에 매장에 들여놓을 수 있었다"며 "생산 단가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조달분보다 두 배가량 높지만 의류 판매에는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국내 봉제업체들의 높은 품질 수준도 'U턴'을 부추기고 있다.
패션업체들에 따르면 청계천 일대 봉제업체들의 평균 불량률은 1% 미만으로 중국·동남아(5%대)에 비해 크게 낮다.
서울 숭인동 봉제공장에서 20년째 재봉사로 일하는 고주명씨(56)는 "저임에 의존한 국내 봉제업체들은 이미 다 해외로 빠져나갔고,한국에 남은 업체들은 정교한 봉제 노하우로 세계적 인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타임''마인' 등 준(準)명품 여성복을 판매하는 한섬 관계자는 "솔기가 살짝 터지는 등 사소한 봉제 불량은 여러번 검수해도 잘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그대로 팔릴 경우 브랜드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우관 한성대 경영학과 교수는 "동대문에서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패션 클러스터는 그때그때 빨리 값싸게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커왔다"며 "이 때문에 인건비 상승으로 위기를 겪던 봉제업체들이 내수 브랜드업체의 반응 생산 고민에 대한 '해결사'로 활로를 찾고 있다"고 분석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