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중 유럽의 외딴 숲에 고립된 군인들이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는다.

여동생을 잃은 어린이 렉터는 후일 성장해 그들에게 '식인(食人)'의 복수극을 펼친다.

삶의 끔찍한 체험을 동일한 방식으로 돌려주는 운명의 순환.잘 짜여진 스토리가 실감나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피터 웨버 감독의 '한니발 라이징'은 가장 성공한 공포영화 '양들의 침묵'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1991년 토머스 해리스 원작 소설을 극화한 '양들의 침묵'은 흥행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공포영화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이번 영화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주인공 한니발 렉터의 색다른 매력.그는 여느 공포영화 속 살인마들처럼 정신이상자나 성적 피학대자,이상공격 성향의 인물이 아니다.

인육을 먹는 엽기적인 살인마이지만 거친 동물도 아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우아하고 세련됐다.

고도의 지적 능력으로 여수사관 스털링을 도와 다른 살인범을 잡기도 한다.

또 여동생과 숙모 무라사키(궁리)에 대한 진한 애정을 견지한다.

그는 착한 여인의 보호자이며,선량의 친구다.

이 영화는 렉터의 성장기로 돌아가 그의 정체성 형성 과정을 탐색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 내면의 광기를 들춰내는 현대의 카니발리즘(식인풍습)과도 같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적의 살을 먹는 관습은 적의 힘을 빼앗는 의식이었다.

렉터는 자신이 죽인 전쟁범죄자들의 얼굴을 뜯어 먹는다.

또한 죽은 가족의 살을 먹는 행위는 그를 잊지 않는다는 의미다.

렉터가 여동생의 환영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이유도 전범들과 함께 죽은 여동생의 살을 먹었기 때문이다.

등장 인물들은 동물을 도살하고,생고기를 씹으며,생선회를 뜬다.

이것은 그대로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박제된 짐승의 머리와 살해된 인간의 머리도 병치된다.

이런 장면들은 식인 풍습이 우리 일상에도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거듭 상기시키는 장치다.

오는 28일 개봉,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