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찬 < 사회부차장 ksch@hankyung.com >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1년에 서너 차례 '계기수업'이란 것을 한다. 계기수업은 말 그대로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학생들에게 핫이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길러주기 위해 마련됐다. 제대로만 된다면 학생들이 잠시 딱딱한 교과과정에서 벗어나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힘을 키울 수 있는 그야말로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전교조가 실시한 계기수업을 보면 당초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 대부분 정치적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압사 사건 관련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수업이 그랬고 2003년 4월 미국 이라크전 관련 반전평화 수업도 그 범주에 속한다. 2005년 11월 반APEC 관련 수업은 비교육적인 수업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반FTA 수업도 마찬가지다. 전교조가 한·미 FTA 저지교육공동대책위원회의 당사자이니 FTA 부작용이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었을 게다. 비정규직 법안 관련 수업은 파업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당시 장혜옥 전교조 위원장은 "전교조는 전교조다운 방식으로 민주노총 4월 총파업에 참여할 것"이라며 "그 출발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다루는 공동(계기)수업을 집중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학생들을 볼모로 교단에서 '노동운동'을 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이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계기수업을 두고 학생 의식화 도구가 돼버린 '괴기수업'이라고 비난한다. 가치관이 아직 확립되지 못한 자녀들에게 왜곡된 시각을 주입한다며 학부모들의 반발도 컸다. 오죽하면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섰을까. 노 대통령은 전교조의 반미 교육에 대해 "특정 교원단체가 국가적 공론이 이뤄지지 않은 사안을 아이들에게 가르쳐도 좋은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정치적 우군이랄 수 있는 노 대통령이 봐도 전교조가 지나쳤다는 얘기이다.

정치적 편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전교조가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교육인적자원부가 공동으로 만든 '경제교과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교조는 교육부가 특정 이익단체와 함께 교과서를 만든 것 자체가 잘못인 데다 일부 내용이 왜곡됐다며 교과서를 폐기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교조가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새 경제교과서는 한국경제교육학회가 공모를 통해 선발한 학자들이 중심이 돼 만들어졌다. 교육부와 전경련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의 학자적 양심을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동안 정치색 짙은 계기수업 등으로 교단이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국민적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새 경제교과서 발간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특히나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경제교과서들이 반기업·반시장적이라는 지적이 많은 터였다. 실제로 얼마 전 재정경제부 한국개발연구원 전경련 등이 공동으로 기존 경제교과서 114권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반시장·반기업 정서를 조장하는 내용이 446곳이나 됐다. 이러다 보니 많은 선생님들도 새 경제교과서의 등장을 은근히 기대해 왔다. 그런 만큼 새 경제교과서는 신학기 일정에 차질없이 일선 학교에 배포되고, 학생들에게 시장과 기업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심어주는 지침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