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이틀 앞둔 지난 16일(현지시간) 유엔 회원국 회의를 마치고 나온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표정은 한결 밝아 보였다. 큰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이 역력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하루였다(세자르 마요랄 아르헨티나 대사)"는 촌평이 나오는 걸 보니 회의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던 모양이다.

반 총장이 마음고생을 했던 건 '공약'으로 내걸었던 유엔개혁이 초장부터 반발에 부딪친 때문이었다. 반 총장은 60년 동안 타성에 젖어 있던 유엔개혁을 위해 비대해진 '평화유지국'을 2개로 분할하는 것을 골자로 한 조직개편안을 제시하고 50여명의 유엔 고위직으로부터 일괄사표를 받았다.

문제는 반 총장이 아프리카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자리를 비운 지난달 말 발생했다. 충분한 협의나 검토없이 조직개편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는 반발에 부딪쳤다. "반 총장이 관련 절차를 무시하고 각국 대사를 마치 직원처럼 취급했다(무니르 아크람 파키스탄 대사)"는 불만이 나올 정도였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반 총장이 구사한 건 다름 아닌 특유의 부지런함과 '동양적 접근법'이었다. 그는 회원국 대사들을 그룹별로 만나 차를 마시거나 샌드위치 점심을 함께 하면서 조직개편안을 설명하고 설득했다. 이 과정에서 회원국 대사들은 점심값을 반 총장이 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동안 관행은 점심을 먹는 회의도 거의 없었으며 함께 하더라도 각자 점심값을 냈다는 것.이런 상황에서 반 총장이 직접 점심을 사가며 최대한 겸손하게 이들을 설득하자 그의 진정성을 인정하게 됐다는 평이다.

이런 변화는 16일 회의에서 조직개편안에 대해 긍정적 결론으로 이어졌다. 뉴욕타임스는 19일자에서 '지도력에 대한 의심을 잠재우기 위한 반 총장의 노력이 고비를 넘겼다'고 전해 지도력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반 총장은 세계 최고의 외교관이 됐지만 여전히 겸손하다. 국내에서 자신의 석상 제작 움직임과 관련해 "괜한 짓"이라며 "반대한다"고 분명히 말할 정도다. 이런 그의 태도가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인 유엔에서도 인정받은 것 같아 사무총장으로서의 '성공 예감'이 든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