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煙錫 < THE벤처캐피탈 대표 >

지난해 미국의 저축률이 마이너스 1%라고 한다. 미국의 소비자들은 소득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의미다. 1980년대에 경제생활에 나선 소위 베이비 부머의 재테크 수단을 보면,그들은 과거와는 달리 투자형 자산인 기업연금 혹은 뮤추얼펀드에 자산을 배분했고 그와 함께 성장한 미국 자본시장의 덕을 보고 있다. 1980년대 초에 비해 다우존스 지수는 현재 10배가 넘게 성장함으로써 그들에게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최근 수년간 국내 간접투자시장 역시 크게 성장했다. 그 중에서도 개인투자자들이 많이 참여한 적립식펀드의 영향으로 주식형펀드의 규모는 52조원에 이르러 6년 전보다 10배 이상 성장했다. 그럼에도 아직 국내 가계자산 배분은 기형적이다. 지난해 3월 대한상공회의소의 한 조사에 따르면,국내 가계자산의 약 89%가 부동산에 편중돼 있고 유가증권은 0.9%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성장 초입의 국내 간접투자시장을 어떻게 더 활성화(活性化)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과연 투자자를 제외한 간접투자시장의 주요 참여자들인 펀드판매사와 자산운용사가 더 큰 자본시장 창출을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느냐를 점검해 봐야 한다.

펀드판매사란 펀드상품을 투자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창구로서 주로 은행과 증권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들 펀드판매사의 이기주의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향후 국내 자본시장의 성장은 장담하기가 어렵다.

판매사의 이기주의는 펀드의 비용구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펀드의 비용은 크게 투자자가 직접 부담하는 비용과 펀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부담하는 비용이 있다. 이 중 판매사와 관련되는 항목은 '판매보수'와 '판매수수료'가 있는데,'판매수수료'는 상대적으로 높은 요율(料率)이거나 일회성인 데 반해 '판매보수'는 요율은 낮지만 펀드의 존속기간 내내 펀드를 통해 투자자가 부담하는 비용이다.

미국의 경우 판매보수가 아닌 판매수수료를 부과하는 펀드가 일반화돼 있고,판매보수를 부과하는 경우에는 보다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킬 것을 요구한다. 이는 판매비용을 펀드에서 부담할 경우 자산운용사는 펀드 자산을 증가시키기 위해 판매비용을 과다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개연성(蓋然性)이 있기 때문이다.

시판 중인 국내 펀드 대부분은 판매보수를 선택함으로써 펀드가 창출해내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투자자가 아닌 판매사가 존속기간 내내 수취해 가고 있다. 더구나 총보수 비율도 미국보다 훨씬 높다. 판매사 이기주의는 자산운용사가 처한 현실과도 맥을 같이한다. 대형운용사 대부분이 판매사의 자회사이기 때문에 판매사의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게 현실적인 문제다.

지금 국내 자본시장은 폭발적인 성장 가능성을 안고 있다. 마치 1980년 겨우 5.7%의 미국 가계가 펀드를 보유했던 것이 2002년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으로 늘면서 자본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던 것처럼 국내 역시 현재 부동산에 편중된 가계의 자산배분 구조는 더 이상 커질 여지가 없다. 펀드판매사와 자산운용사 모두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정부의 개선의지도 중요하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원인 중 하나로 대체투자안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을 들 수 있다.

우리 국민들에게 부동산은 의식주라는 기본권리 외에 어릴 적부터 유일하게 알고 있는 재테크 수단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부동산투자를 대체할 수 있는 자본시장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금융당국 역시 이러한 펀드업계의 불합리성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지만 좀 더 신속하게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비용구조뿐만 아니라 소규모 펀드의 양산은 회계감사를 회피함으로써 운영의 투명성을 저하시키고,빈번한 펀드매니저의 이직(移職) 및 교체는 투자자에 대한 약속위반일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우리나라의 성장을 주도해 나갈 업종은 금융자본일 수 있다. 제조분야의 삼성전자처럼 금융분야의 세계적 기업 탄생을 위해서도 판매사 주도의 이기주의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경기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