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東根 < 명지대 사회과학대학장·경제학 >

사람들은 '실패 사례'보다 '성공 사례'에 솔깃해 한다. 하지만 성공을 가져다 주는 조건이 정확하게 재연(再演)되지 않기 때문에,성공 사례는 역설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실패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따라서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시사 받게 된다. 이 같은 관점에서 지혜의 보고(寶庫)로서의 '실패학(失敗學)'은 과장이 아니다.
참여정부 4년에 대한 경제부문 평가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참여정부의 성장률 평균 4.2%는 부(負)의 성장률을 기록한 1998년을 포함시켰을 때의 김대중 정권의 성장률 평균(4.4%)보다도 낮은 수치이다. 물론 경제규모가 커지면 성장률이 낮아지는 건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결과다. 결국 관건은 성장률이 낮아지는 '속도'에 달려 있다. 경제 규모와 인구를 감안할 때 우리 경제는 아직 '성장 페달'을 힘차게 밟아야 한다. 따라서 성장률 4.2%는 '반 토막 성장'인 것이다. 기업의 신규 설비투자가 부진한 것도 문제다. 생산능력 둔화로 성장잠재력이 잠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경제는 일찍 성장판이 닫힌 청소년에 비견될 수 있다.

경제는 경제변수만으로 그 성과가 결정되지 않기 때문에,종국적으로는 경제 패러다임의 문제로 귀착된다. 참여정부의 경제실패는 패러다임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참여정부의 경제 패러다임은 '좌파적 국가 개입주의'로 집약된다. 좌파에게 인간의 이성(reason)은 "대문자 R로 시작되는 빈틈없는 능력"이다. 그리고 국가 개입주의는 오류(誤謬)에서 자유롭고 지고지선(至高至善)한 지도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참여정부는 이성에 기초한 정부 조직을 통해 시장을 통제·관리함으로써 윤리적이고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 왔다. '기득권 위주의 경제구조를 바꿔 성장과 분배의 새로운 틀을 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같은 견지에서 참여정부 4년은 '도덕적이고 온정적이며 일하는 정부'가 시장 위에 군림해 온 기간이었다. '큰 정부,작은 시장,거미줄 규제'의 정책조합은 균형발전,동반성장,분배,복지,약자 보호를 위한 선택이었다. 친(親)시장,친(親)기업,경제우선 대신 시장간섭적,기업규제적, 그리고 사회우선 정책에 치중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또한 참여정부가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는 무오류이기 때문에,참여정부에 정당한 것은 "모두에게도 정당하다"고 믿었다. 모든 국민은 하나의 시스템이나 이념으로 통합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여정부는 자신과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실패는 늘 '남의 몫'이다. 그때마다 노무현 대통령은 '소통(疏通)'의 문제를 제기하고 '진정성'을 거론했다. 그러나 사회통합은 점점 멀어지고 계층 간 대립구도가 고착화됐다. 인간의 본성과 현실을 거스르고 시장원리에 반(反)하는 정책은 역작용을 일으키게 돼 있다. '저성장의 구조화,양극화 심화,근로유인 상실,복지 기대심리 확대,국가채무 누적,성장잠재력 저상(沮喪)' 같은 사전적으로 기대되지 않았던 '이례적 모순'의 누적이 그 사례인 것이다.

참여정부 '남은 1년'의 과제는 자명(自明)하다. 5년을 '4+1' 보다 더 황금분할할 수는 없다. 역사는 현재를 매개로 한,과거와 미래의 대화인 것이다. 따라서 참여정부는 1년에 걸쳐 지난 4년간 어떤 이유에서 사전적 선한 의도가 사후적으로 '우울한 성과'를 초래했는지를 깊이 성찰(省察)할 필요가 있다. '1년의 정리'는 '실패학'에 충실할수록 좋다. 1년의 제대로 된 정리가 수반될 때,1년을 포함한 5년이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이든 온전하게 '한 단위'로 묶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이렇게 발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임기 말년에 장기 정책들을 쏟아내거나,헌법상의 권한을 거론하면서 논쟁의 중심에 서려는 것은 마땅히 자제돼야 한다.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