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의 행동이 제각각이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아이,그림을 그리는 아이,글씨를 쓰는 아이,선생님과 함께 퍼즐 맞추기를 하는 아이….선생님은 아이 전체를 대상으로 수업하지 않고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가르친다.

공부하는 내용도 방법도 각각 달라서 산만할 듯싶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너무나 진지하다.

여느 아이들에 비해 지각능력이 떨어지는 탓에 교육효과가 금세 나타나지 않지만 또박또박 설명해주는 선생님들의 끈기 또한 놀랍다.

광주시 북구 오룡동의 지체부자유아 교육기관인 은혜학교.1982년 조기교육센터로 시작해 지금은 유치부에서 초·중·고등부까지 218명의 학생이 공부하는 큰 터전으로 발전했다.

학교 안을 둘러 보니 미술활동실,음악실,과학실,감각통합실,가사실습실 등 다양한 특별교실과 제과제빵실,교육정보실,도예실,컬러믹스실 등의 직업보도실,원예활동실 등을 갖춰 교육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강당과 수영장 등 체육시설도 갖췄다.

하지만 학생마다 뇌성마비,근육병,선천성 기형 등 다양한 종류의 장애를 안고 있어 각각의 장애 특성과 수준에 맞게 교육해야 하는 데다 나이가 들수록 장애가 중증화·중복화되기 때문에 일반 학교에 비해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학급 구성에서부터 개인별 지도계획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현재 이곳의 학급당 학생 수는 8명.그나마 올해에는 3학급이 늘어서 학급당 학생 수가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기준 초과 상태다.

하지만 이곳을 운영하는 사랑의 씨튼 수녀회 수녀들과 교사 80여명,그리고 수많은 후원자와 자원봉사자 등이 쏟아내는 사랑이 힘든 현실을 넘어서게 한다.

"1985년에 현재 위치로 학교를 옮겼는데 돈이 모아지면 건물을 하나 더 지었기 때문에 3~4년 주기로 공사를 해야 했어요.

장애아동들의 운동과 재활에 수영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해서 수영장을 짓기로 했을 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성용 전 회장께서 7억원을 보태주셨지요.

지금도 그분의 생전 약속대로 금호에서 은혜학교의 연료비를 전액 지원해주고 있고요.

지난해 말에도 박삼구 회장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30억원을 기부하면서 그 중 일정액을 저희 학교에 지정기탁하는 등 여전히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요."

박순옥 교장 수녀의 설명이다.

박 교장은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왼손이 모르게 좋은 일을 하는 '숨은 손'이 너무나 많다"면서 사랑의 위대한 힘을 역설한다.

날마다 찾아오는 20~30명의 자원봉사자,후원자들이 건네는 사랑은 물론 아이들의 내면에 담긴 맑은 사랑까지….

"저희는 우리 아이들 안에서 늘 예수님을 만나요.

어른들끼리 치여서 피곤할 때에도 아이들을 잠깐만 보면 힘이 솟아요.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순진무구함을 보면 맑은 거울을 보는 것 같지요.

그래서일까요,이곳에 파견나와 있는 공익근무요원이 처음에는 아이들한테 밥을 떠먹이면서 침이 묻지나 않을까 조심하다가 한 달쯤 지나면 아이 한 입 떠먹이고,자기 한 입 떠먹고 그래요.

아이들 속에는 분명 사랑받을 씨앗이 있거든요."

언덕 위의 은혜학교에서 내려오면 직업재활시설 겸 보호작업장인 씨튼장애인직업재활센터가 있다.

지체장애인들이 유기농 우리밀로 빵을 만들고 전자기기 부품을 조립해 자활을 도모하는 곳이다.

이곳 제과제빵실에서는 16명의 지체장애인이 일하는데,지난해 2억1000만원의 매출액으로 1억1000만원의 순이익을 남겼다고 한다.

제빵실에 들어서자 직원들이 오전에 구운 빵을 포장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처럼 은혜학교와 재활센터를 운영하는 사랑의 씨튼 수녀회는 1809년 미국의 볼티모어에서 창설된 수도회로 겸양과 소박,사랑을 활동의 모토로 삼아왔다.

이 수도회는 미국에서 창설된 최초의 수도회로,창설자 엘리사벳 앤 시튼은 미국 최초의 성인이자 유일한 성인으로 기록된 인물이며 여느 수도성인과는 다른 점이 많다.

영국 식민지 시절 뉴욕에서 태어난 그녀는 원래 성공회 신자로 부유한 상인의 아들과 결혼해 다섯 자녀를 두었으나 남편과 일찍 사별한 뒤 수도생활에 뛰어들어 수도회를 창설했다.

따라서 성녀 엘리사벳은 아내,어머니,과부,수도자,수녀회 창설자 등 다양한 형태의 삶을 통해 그 시대에 필요한 것을 보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특히 여성과 어린이들 안에 있는 예수를 만나고 봉사했다.

성공회 신자였을 때부터 뉴욕에서 '가난한 과부들을 위한 자선회'에서 봉사했고 자신의 아이들은 물론 시동생과 많은 고아,가난한 학생의 어머니가 돼서 그들을 기르고 가르친 덕분에 일찍부터 '마더 씨튼'으로 불렸다고 한다.

1960년 한국에 진출한 이 수녀회가 강진 성요셉여중·고,부천 소명여·중고 등의 학교를 운영하고 청소년 및 여성 쉼터,공부방,어린이집,상담센터,복지관 등 다양한 시설을 운영하는 것은 이런 창설자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다.

광주시 본촌동 부용산 중턱에 있는 사랑의 씨튼 수녀회 한국관구 총원에서 만난 오세향 관구장 수녀는 "성녀 엘리사벳은 가정생활을 하면서 성녀가 되신 분으로 가정 파괴가 심각한 오늘날 모든 이의 어머니로 산 그분의 '어머니 영성'은 더욱 빛이 나고 소중하다"고 설명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와 함께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이를 위해 시대의 징표를 읽어야 하지요.

지난해 한국인과 국제결혼한 여성들에게 한글,컴퓨터,원예 등을 가르치고 그들의 한국생활 적응을 돕는 '희망쌓기 운동'을 시작한 것이나 10년 이상 '농촌·농민 되살이 운동'을 전개해온 것,부천에 가정상담소를 연 것 등이 그런 사례입니다.

매맞는 여성과 청소녀를 위한 쉼터,갈라진 가정을 위한 상담센터 등도 확대할 생각이고요."

오 수녀와 자리를 함께한 강신문 본원장 수녀는 "수도생활이란 하늘나라를 지상에서 앞당겨 사는 것"이라고 했다.

지상에 하늘나라를 세우는 것,그것은 모든 이에 깃든 사랑을 일깨우고 나누는 데서 비롯되지 않을까.

광주=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