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載春 < 영남대 교수·교육학 >

최근 정부는 '비전 2030 인적자원 활용방안'으로 '2년 빨리,5년 더 일하는 사회 만들기' 전략인 2+5전략을 발표했다. 군복무 단축,학제 개편,실업계 교육 활성화 등을 통해 2년 일찍 사회에 진출하고 5년 더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교육학을 전공하는 필자에게 학제(學制) 개편이 특히 눈에 띄었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학제 개편 방안의 초점은 분명하다. 학생들이 사회에 2년 빨리 진출할 수 있도록 취학 연령을 낮추거나 초·중등학교의 교육 연한을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현 학제가 도입된 지 55년이 넘었으며,2030년대를 기준으로 삼을 경우 80여년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할 때,현 학제를 재검토할 필요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비전 2030'은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초·중등 교육기간을 12년 미만으로 줄일 경우 세계적인 표준에서 벗어난다는 문제가 있다. 각급 학교의 학년 구분은 나라마다 다르지만,초·중등교육 12년은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돼 있다. 초·중등 교육기간을 12년 미만으로 줄일 경우 우리 교육은 세계 표준에서 벗어날 것이며,국제 간의 학교이동과 학력인정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학제의 세계 표준화를 위해 9월 신학기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초·중등 교육기간을 세계 표준에서 어긋나는 12년 미만으로 감축하는 방안은 상호 모순적이다.

둘째,초등교육의 시작 연도를 현재 만 6세에서 만 5세나 5.5세로 앞당길 정도로 조기취업이 절박하며,바람직한가라는 문제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취업 연령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것은 교육기간이 길어서라기보다는 취업환경이 좋지 않아서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등교육의 취학 연령을 낮출 경우 그렇지 않아도 만연한 조기 사(私)교육의 열풍이 강화될 것이며,어린 아동들의 지덕체(智德體)의 균형잡힌 발달은 더욱 더 어려워질 것이다.

셋째,정부가 발표한 2+5전략을 접하면서 정치·경제에 대한 교육의 예속화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학제 개편 논의가 교육적인 필요보다는 정치·경제적인 관심에서 촉발됐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이 사회의 지원에 의존하며,한 사회의 존속과 발전에 결정적인 만큼,학교 교육 또한 사회의 필요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학교 교육은 최소한의 교육적 필요에 근거해 변화돼야 할 것이며,학교 교육의 필요와 무관한 정치·경제적 필요에 근거한 변화는 최소화돼야 한다.

1981년에 교육부의 주도로 시작된 학제 개편 논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적으로 재개돼 왔다. 특히 1987년 이래 5,6년 주기로 반복된 학제 개편 논의는 교육부보다는 교육 관련 대통령자문기구에 의해 주도돼 왔다. 이는 학제 개편 논의가 교육적 필요보다는 정치적 관심에서 시작되었음을 방증한다. 정권의 출범과 더불어 의욕적으로 시작된 학제 개편 논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교육계 안팎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

현 정권의 교육혁신위원회가 주도한 학제 개편 논의도 예외는 아닐 듯 싶다. 지난 2년 동안 지지부진을 면치 못한 학제 개편 논의가 이번 '비전 2030전략'을 통해 일시적으로 새로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현 정권의 퇴장과 함께 비전 2030의 학제 개편 논의도 역사의 장막(帳幕)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라고 본다면 지나치게 비관적일까.

2030년에는 우리 사회의 취업인력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조기취업 문제가 사회적 아젠다로 재등장할 수도 있다. 정부는 교육기간을 줄여서 취업 인력을 '빨리빨리' 길러내는 방안보다는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여서 경쟁력있는 인적 자원을 양성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기 바란다. 그러고도 조기취업이 필요하다면,교육기간을 줄이는 방안보다는 능력있는 학생의 월반(越班)이나 조기 졸업과 같은 탄력적인 학제 운영 방안을 마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