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는 절대 서지 않겠다."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와 이명박(李明博) 전 서울시장 간의 '검증공방' 속에서 좀체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손학규(孫鶴圭) 전 경기지사가 승부수를 꺼내 든 듯한 느낌이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마지막 단계에서나 나올 법한 카드인 `경선 불참'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은 물론 당 지도부까지 강력하게 압박하고 나선 것.
손 전 지사는 25일 여의도 한 호텔에서 강재섭(姜在涉) 대표 주최로 열린 조찬간담회에서 "경선은 최종적으로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라면서 "특정후보를 위해 들러리를 세우는 룰에는 합의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손 전 지사의 대리인으로 당 경선준비위에 참여하고 있는 정문헌(鄭文憲) 의원이 지난주 `경선의 방식과 시기를 그대로 가져간다면 경선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 `엄포성' 발언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 셈이다.

손 전 지사의 발언은 현행 경선구도가 박-이 양자대결 양상으로 고착화되는 흐름을 보이면서 자신의 공간이 좁아지고 있는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극약처방'을 예비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물씬 풍기고 있다.

실제 손 전 지사는 후보검증이 '이전투구' 양상으로 번지면 적잖은 반사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현상만을 보면 여론의 관심이 두 선두주자에게 집중되면서 오히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채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게임은 끝난 것 아니냐'는 설익은 전망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지지율 정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손 전 지사로서는 경선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민심을 가급적 많이 반영하는 구도가 돼야 역전도 바라볼 수 있지만 `시기를 늦추자'는 박 전 대표와 `국민참여 폭을 넓히자'는 이 전 시장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자신에게는 불리한 현행 룰대로 경선에 임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이는 손 전 지사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이 때문에 경선불참이라는 `배수진'이 다른 정치적 활로 모색과 연관돼 있는 `다목적용'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이 당 안팎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 범여권 후보 1위에 올라 있는 그로서는 경선 승리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되거나, 정국에 돌발상황이 생길 경우에 대비해 `제3의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는 관측이 바로 그것.
그가 조기 후보 등록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것도 후보 등록이 이뤄지면 제3의 길 모색이 어려워 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관측도 이런 맥락이다.

당 지도부나 다른 유력주자 진영도 손 전 지사의 향후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의 하나 그 같은 상황이 오면 대선판 자체가 흔들리면서 대선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손 전 지사의 경선 룰 변경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 고민이 깔려 있다.

핵심 당직자는 "우리는 어쨌든 `빅2'는 물론이고 손 전 지사까지 안고 가야 확실하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서 "지도부와 대선주자들이 현실적인 타협안을 마련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손 전 지사는 이날 대선주자 간담회를 계기로 두 경쟁 주자들과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는 전략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두 주자 간의 검증공방에 대해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 `당심(黨心)' 에 적극 호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공방이 자칫 당의 분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지지외연을 넓혀보겠다는 계산인 셈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