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가 없어지면 규제도 폐지돼야 한다."

이 같은 시장과 국민의 요구를 실행하기 위해 1997년 도입된 '규제일몰제'가 말뿐인 제도로 전락했다.

새로 규제를 도입하거나 기존의 규제를 강화할 때 존속기한을 둬 주기적으로 규제의 타당성을 검토하자는 게 이 제도의 취지이지만 실제로는 적용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유명무실한 제도가 됐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6일 내놓은 '규제일몰제 시행평가와 개선방향' 보고서에서 규제일몰제가 도입된 1997년 이후 신설된 규제 2549개 중 존속기한이 설정된 경우는 48건(1.9%)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이후에 신설된 규제 중에서는 규제일몰제가 적용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는 사유만 제시하면 규제일몰제의 적용을 피할 수 있는 현행 제도의 맹점 때문이라고 상의는 지적했다.

또 규제일몰제를 도입하기 이전부터 시행된 기존 규제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제도의 실효성을 낮추는 데 큰 몫을 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존재하는 5011개의 규제 중 규제일몰제의 적용을 받는 규제는 0.95%에 불과하다.

상의는 또 의원 입법을 통해 신설된 규제의 경우 규제일몰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정부 입법의 경우 형식적이나마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 심사를 받지만 의원 입법의 경우 규제일몰제를 적용할 방법이 아예 없다는 것.

재계 관계자는 "정부 부처들이 까다로운 규제심사를 피하기 위해 의원 입법을 통해 우회적으로 입법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규제일몰제는 내용면에서도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이나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주요 규제는 대부분 존속기한이 설정되지 않고 영향이 미미한 규제만 형식적으로 적용을 받도록 해놨다는 분석이다.

상의는 규제일몰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우선 경제적 규제에 대해서만이라도 원칙적으로 존속기한을 설정하도록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적 규제는 시장거래를 제한할 뿐 아니라 사전에 효과를 측정하기 어려워 반드시 존속기한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상의는 또 △규제일몰제 적용을 피하는 사유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국회 내에도 규제개혁특위를 상설화해 의원입법에 대해서도 규제일몰제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

[ 용어풀이 ]

◆규제일몰제=규제가 만들어질 당시와 비교해 사회경제적인 상황이 변해 규제의 타당성이 없어졌는데도 규제가 지속돼 부작용만 양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997년 8월에 도입된 제도다.

이를 위해 규제를 도입할 때 존속기한을 정해놓음으로써 주기적으로 해당 규제의 타당성을 점검하고 존폐를 결정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