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호 회장의 재추대 실패 이후 27일 개최된 전국경제인연합회 총회가 또다시 차기 회장을 선출하지 못함에 따라 한국 재계의 대표단체인 전경련의 회장 선출구조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금까지 전경련은 회장단 모임을 통해 차기 후보에 관해 의견을 모으고 총회에서 이를 추인하는 형식으로 회장을 선출해 왔다.

회장단 모임의 추대는 최소한 형식상으로는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한다.

이와 같은 방식은 삼성, 현대, LG, SK 등 4대 그룹 총수들이 번갈아 회장직을 맡으며 리더십을 발휘한 90년대 중반까지는 잘 작동해 왔으나 김우중 전(前) 대우그룹 회장과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이후 4대그룹이 전경련 활동에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2003년 손 전 회장의 퇴진 이후 전경련은 새 회장을 뽑지 못해 결국 '회장 유고시 부회장 가운데 최연장자가 직무를 대행한다'는 정관 규정에 따라 강신호 현 회장을 회장 직무대행으로 선출했고 강 회장은 그 이후 지금까지 회장직을 수행해오고 있다.

손 전회장의 잔여임기가 끝나 정식 회장을 선출해야 하는 2005년에도 4대그룹 회장들이 나서기를 꺼리는 가운데 회장단은 완강히 사양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거듭 방문해 회장직을 맡아줄 것을 간청하다 끝내 거부당하자 결국 강 회장을 재추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강 회장이 개인적인 문제와 전경련 운영방식 등에 불만을 품은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부회장직 사퇴의사 표명으로 더 이상의 연임을 포기하게 되자 '최연장자 규정'에도 의존할 수 없어 현재로서는 차기 회장 선출이 난망한 실정이다.

조건호 전경련 상근 부회장은 총회에서 새 회장 선출이 무산된 후 기자회견에서 "한달 안에는 새 회장을 선출해야 할 것이며 현 회장단 가운데 의사가 있는 분이 두분 이상 있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으나 지금과 같은 기류가 변하지 않는 한 지난 1, 2개월의 상황이 반복될 소지가 크다.

강 회장이 3연임을 포기한 이후 재계에서는 연배나 전경련 활동경력, 개인적인 능력 등을 감안할 때 최적의 후보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을 선출하는 쪽으로 회장단의 의견이 모아졌다는 관측이 제기됐으나 이날 총회에서 드러났듯 조 회장의 선출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 기류도 분명했다.

문제는 전경련 회장은 회장단의 '만장일치'로 선출한다는 관행상의 원칙이다.

이 때문에 회장단 가운데 단 한사람만 완강히 반대해도 차기 회장 선출은 불가능한 구조라는 것이 전경련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조 부회장도 "전경련 회장 선출은 회장단 모두가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전경련 안팎에서는 현실성 없는 '만장일치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조 부회장은 이에 대해 "현재로서는 '만장일치 선출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회장단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이에 관한 대안 마련에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조 부회장은 "전경련 회장 선출은 어떤 면에서 추기경들이 '만장일치'로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와 유사하지만 추기경들과는 달리 회장단은 함께 모이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보다 더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먼저 나서기를 꺼리는 한국적 겸양의 풍토와 상호 견제 심리가 있는 회장단 분위기도 회장 선출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창업자와 2, 3세가 혼재돼 있고 사업상의 라이벌 관계와 개인적인 친소관계에 따라 얽히고 설킨 회장단 내부 관계가 현안에 대한 합의에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출 방식보다는 4대그룹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재의 풍토에 더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4대그룹의 한 임원은 "과거 삼성, 현대 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때는 규모가 작은 기업 경영자들이 이견을 내세울 분위기가 아니었지만 4대그룹이 전경련에서 한발 빼는 양상을 보이면서 '고만고만한 기업들'이 서로 자기 주장을 고집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 같다"고 현재의 전경련 회장단 분위기를 나름대로 분석했다.

그는 "경제단체, 특히 대기업단체는 역시 규모가 큰 기업에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재의 정치적.사회적 상황이 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서 "결국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여건이 조성돼야 전경련이 위상을 회복하고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며 회장 선출 구조의 문제도 그것이 근본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