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폭탄테러 한국군 첫 희생] 제대 3개월 앞두고 숨진 윤장호 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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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 앞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로 숨진 고 윤장호 병장(27)은 편한 생활을 마다하고 특전사에 자원 입대했던 애국청년이었다.
그의 죽음은 일부 병역기피자들의 일그러진 세태 속에서 진정한 조국애를 일깨워주고 있다.
1994년 서울 내발산동 발산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중·고교를 졸업하고 인디애나대학 경영학과를 마친 윤 병장은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던 재원이었다.
그는 그러나 군 입대를 결심하고 2005년 6월 특전사 통역병으로 자원입대했다.
마침 아프가니스탄 다산 군부대에서 지원병을 뽑는 사실을 알고 자원한 것.한국내 부대에서 다른 젊은이들처럼 비교적 안전하게 군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을 마다하고 이역만리에서 고생스런 길을 선택한 것이다.
아버지 윤희석씨(67)는 "아들이 '영어 실력을 활용해 통역병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건너간 뒤 학업 때문에 한 번도 귀국하지 않은 아들이 군 입대를 위해 11년 만에 한국에 들어왔었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오래 떨어져 지낸데다 막내 아들을 위험한 곳으로 보내기 싫어 온 가족이 만류했다.
하지만 윤 병장은 "이왕에 나라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고집을 피웠다.
어머니 이창희씨는 "그때 말렸어야 하는데"라며 "제대 석 달을 앞두고 이런 변을 당해 불쌍해서 어떡하느냐"고 목이 메었다.
아버지 윤씨에 따르면 2남1녀 중 막내아들인 윤 병장은 미국 유학생활 중에도 오히려 부모를 걱정하는 사려깊은 아들이었다.
그는 "아들이 미국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낼 때 (나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외로워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주 울기도 했다"며 "(내가) 그때마다 하느님이 옆에서 친아버지처럼 (너를) 보살펴주고 있으니 너무 외롭게 생각하지 말라고 아들을 다독거린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윤 병장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내온 편지에는 "이 곳은 위험하지 않고 외롭지도 않아요.
6개월 후에 제대하면 곧 만날 수 있다"며 오히려 부모를 위로하기도 했다.
이날 비보를 접한 윤 병장의 어머니 이씨는 "진짜 장호가 죽었단 말이야?"를 반복하며 흐느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아버지 윤씨는 "장호는 늘 '제대하고 나서 대학원 공부까지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살겠다'고 말하곤 했다"며 "(장호의) 죽음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떨궜다.
윤 병장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싸이월드 미니홈피(http://www.cyworld.com/aspire1014)에는 조문객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윤 병장의 부모는 호주에서 목회 활동 중인 장남 장혁씨가 도착하는 대로 28일 밤 11시50분 출국,두바이를 거쳐 아프간에 도착할 예정이다.
현재 고 윤 병장의 시신은 현지 미군기지 내 병원에 안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병장의 장례는 육군장으로 치러지며 시신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