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사들이 1조원 이상의 사회공헌기금(가칭 보험산업발전기금)을 내놓기로 함에 따라 한동안 표류했던 생보사 상장 작업에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생보사가 상장 차익을 계약자에게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상장자문위원회의 상장안에 대한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센 상황에서 최대 이해당사자인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이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계약자 몫에 해당되는 만큼의 거액을 내놓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삼성·교보 1조원 정도 낼 듯

상장과 연계된 생보사의 공익기금 출연 논의는 사실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의 문제다.

두 회사는 1989~1990년에 상장을 전제로 자산재평가를 실시했다.

상장자문위원회는 여기서 발생한 내부유보액(자본잉여금)을 '계약자 몫의 부채'로 규정,계약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다른 생보사들은 외환위기 이후 대부분 주인이 바뀌었으며 중소형사들은 자본을 확충해야 할 정도로 재무구조가 취약하다.

경제개혁연대,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지난해 8월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을 지목하면서 1조2000억원 정도를 계약자 몫으로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자문위의 상장안에 의하면 두 회사에 대해 상장차익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법적인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장시 대주주들이 대규모 차익을 누리는 만큼 국민정서를 감안해야 한다는 게 감독당국의 주문이다.

◆공익기금 조성 어떻게

생보사들은 매년 거둔 이익의 일부를 법정기부금 한도 내에서 20~30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꺼번에 수천억원을 출연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데다 법적으로 배임에 해당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금 출연방식에 대해 일부 시민단체는 "대주주도 공익기금을 출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보험사들은 "공익기금 출연은 주주에게 돌아갈 배당가능 이익에서 이뤄지는 만큼 주주가 간접적으로 돈을 내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최대 관심사는 삼성과 교보의 출연 금액이다.

시민단체는 상장시 삼성생명은 15조원,교보생명은 3조원의 차익이 생긴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두 회사가 1조원 규모를 낼 경우 상장차익 매출액 재무구조 등 여러 가지 지표를 비교해 출연금을 배분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삼성이 6000억~8000억원을,교보가 2000억~4000억원 규모의 출연금을 분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과 교보생명을 제외한 동부생명 동양생명 미래에셋생명 등 나머지 회사들은 상장추진 회사와 상장을 추진하지 않는 회사로 구분한 뒤 매출액에 따라 출연 규모를 차등화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각사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공통분모를 찾기 어렵지만 삼성·교보의 기금출연 규모만 확정되면 나머지 회사들은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정서도 감안

삼성과 교보생명이 생보협회와 감독당국 등을 통해 1조원 규모의 기금을 출연할 의사를 내비친 것은 자칫 상장작업이 물건너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자문위가 작년 말 생보사의 손을 들어주는 상장안을 증권선물거래소에 제출한 지 2개월이 지났지만 상장 규정 개정 등 후속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금융감독위원회 등 정부당국이 시민단체의 반발과 일부 국회의원의 재검토 요구 등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데 따른 것이었다.

윤증현 금감위원장이 지난달 생보사에 강력한 신뢰회복 방안을 주문한 것도 이 같은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공익기금 출연과 관련,정부당국과 생보업계는 알맹이 없는 '선문답'만 주고받았을 뿐이다.

'누가''얼마를''어떻게' 내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을 뿐더러 강제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공익기금 출연 논의가 더뎌지자 정부 일각의 시선도 싸늘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회가 오는 5일 자문위원회와 시민단체 대표 등을 참석시켜 공청회를 열기로 하는 등 상장 관련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갈 조짐까지 보이자 삼성·교보생명이 전향적인 자세로 돌아섰다는 분석이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