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 충격(Greenspan shock)'과 '버냉키 효과(Bernanke effect)'.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전·현직 의장들이 내놓은 서로 다른 경기진단으로 뉴욕증시가 출렁이고 있다. 그로 인해 글로벌 증시의 향방도 점치기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경기에 대한 진단부터 다르다. 벤 버냉키 현 의장은 지난달 14∼15일 상원 금융위원회와 28일(현지시간) 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경제는 안정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거듭 밝혔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은 28일 뉴욕증시를 구해냈다. 전날 상하이 증시 폭락에다 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경기침체론까지 겹쳐 3.3%나 빠졌던 다우지수를 하루 만에 0.43% 올려놓았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1일 도쿄에서 열린 CLSA일본포럼에 위성으로 한 연설에서 경기침체 가능성을 또다시 주장했다. 지난달 26일의 연설과 비슷한 톤이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미국 경기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possible)'고 말했다. 기업의 이익률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26일 연설과 달라진 점이라면 침체 시기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주택이나 물품재고 등이 줄고 있어 침체가 올해 안에 일어날 것 '같지(probable)'는 않다는 단서를 달았다. probable은 possible한 것 중 어떤 조건이 갖춰진 상태에서 전망된다는 뜻이다. 조금 강한 단어다. 올해 침체 여부를 조금 강한 말로 부정한 것은 올해 안에는 침체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낮게 봤다는 것이다. 지난달 26일 연설에선 올해 침체 가능성을 열어놨었다. 그러나 침체할 수 있다는 기본 인식을 갖고 있는 만큼 낙관론을 펴고 있는 버냉키 의장과는 경기진단 코드가 다른 셈이다.

인플레를 보는 시각도 차이가 난다.

버냉키 의장은 "FRB는 경기둔화보다 인플레 압력을 더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현 시점에서 FRB는 인플레 안정보다 혹시 올지 모를 경기침체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금리 문제도 달리 해석되고 있다.

버냉키 의장 대로 미국경제가 안정 성장하고 있다면 당분간 금리는 현 수준이 유지되거나 인플레 여부에 따라서는 인하보다 인상 가능성에 무게가 있다는 것이 뉴욕 월가의 시각이다.

반면에 그린스펀 전 의장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FRB는 조만간 금리인하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빌라노바 경영대학의 빅토 리 교수는 "만약 그린스펀이 연준 의장직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면 지금쯤은 금리인하 방안을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 부동산 시장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 고금리로 주택자금을 빌려준 것) 부실을 보는 시각도 차이가 있다.

버냉키 의장은 "금융불안의 한 요인으로 우려하고 있다"며 "FRB는 이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그린스펀 전 의장은 그동안 이 제도의 확산과 부동산 거품 발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는 금리인상으로 주택시장이 조정을 보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글로벌 증시를 흔들어 놓은 또 하나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중국 위안화에 대한 두 사람의 시각도 다르다.

그린스펀 의장은 "경상수지 적자는 미국 스스로의 문제이며 자본수지 흑자로 메워주는 한 크게 우려할 만한 사안은 아니다"며 "최근 자본수지 흑자 규모가 줄어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버냉키 의장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국가도 책임이 있다"며 "최대 적자국인 중국은 위안화 가치를 경제여건에 맞게 적정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오고 있다.

박춘호 홍콩 심플렉스 한국 대표는 "과연 시장에서는 어느 쪽으로 손을 들어줄지 또 하나의 관심거리"라고 밝혔다.

한상춘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