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거장'을 재해석한 브랜드들이 신흥 명품의 한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크리스찬 디오르,잔느 랑방,이브 생 로랑 등 20세기 초반 등장해 1960~70년대까지 최고의 자리에 있던 디자이너들의 정신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리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거장은 갔어도 그를 기억하는 후예들이 옛 명품의 클래식한 매력을 다시 끄집어내 오늘날의 것으로 '재생'시키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최근 클로에와 함께 기존 명품 브랜드의 자리를 위협하는 뉴 럭셔리 그룹의 쌍두마차로 떠오른 '발렌시아가'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브랜드다.

클로에가 무명에 가까운 신진 디자이너의 모던한 감각에 의존한다면,발렌시아가는 전통을 요즘에 맞게 재가공해 복고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1937년 프랑스 파리에 패션 하우스를 열며 세상에 등장했다.

완벽한 건축물 같은 구조와 재단으로 고급품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50년대에 들어서는 단순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디자인으로 세계 패션계에 '미니멀리즘' 바람을 불어넣기도 했다.

발렌시아가는 1968년 에어 프랑스 승무원 유니폼 디자인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고,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도 서서히 일반인들에게서 잊혀져 갔다.

하지만 30년 뒤 다시 발렌시아가는 패션 세상의 중심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1997년 세계 3대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로 꼽히던 천재 니콜라 게스키어가 마음 속으로 흠모하던 발렌시아가의 수석 디자이너를 자원하고 나서면서부터다.

발렌시아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의류와 핸드백은 명품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발렌시아가의 재생을 주목한 구치 그룹은 2001년 브랜드를 인수,전 세계 유통망을 재건했다.

되살아난 발렌시아가는 2004년 한국에도 매장을 냈다.

진출 초기에는 무두질한 양가죽을 사용해 가볍고 튼튼한 빅 사이즈백이 주로 팔렸다.

흔히 '모터사이클 백'이라고도 불리는 가방이다.

발렌시아가의 빅 사이즈 가죽 가방은 이것저것 불필요한 장식을 달지 않아 심플한 분위기를 풍겨 어떤 옷에도 잘 어울리는 패션 소품으로 한국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난해까지도 가방 매출이 65%를 차지해 대부분을 이뤘지만 올 들어선 의류도 제법 팔려나가고 있다.

발렌시아가 의류는 모양에서는 1960년대풍의 클래식한 느낌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소재나 장식 측면에서는 미래를 옮겨온 듯한 '퓨처리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과거와 미래가 충돌하며 빚어내는 신비스러운 느낌이 발렌시아가만의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과거의 디자이너 발렌시아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먼 미래로 날아간 셈이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