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수석졸업자 의대 편입' 충격 박찬모 포스텍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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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명 이공계 중심대학인 포스텍(포항공대)을 수석 입학하고 수석 졸업한 학생이 서울대 의대에 편입해 과학기술계를 우울하게 하고 있다.
이 학생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공계 위기가 우수 인재가 오지 않는 게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동안 이공계를 살려야 한다는 얘기는 수없이 나왔고 정부 차원에서 이공계 살리기 정책을 들고 나온 지도 5년이 지났지만 아직 성과는 기대 이하인 셈이다.
포스텍 박찬모 총장(72)은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번 수석 졸업여학생의 의대 편입이 이공계 위기에 대한 현주소와 관심을 국민들에게 일깨워 전화위복이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무엇보다 이공계 출신들이 사회적인 인식이나 처우 부족으로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며 "이 자긍심이 무너지면 국가의 미래도 암울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다시 한번 이공계 위기론이 일고 있습니다. 어떤 풍조가 고쳐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묵묵히 연구하고 만드는데 전념하는 사람들을 대접하는 실사구시적인 사회분위기'를 만드는데 정치지도자들이 앞장서야 하고 그런 방향으로 사회운동과 인식이 전개되었으면 합니다. 1만명을 먹여 살릴 엘리트 이공계 출신이 많아야 하는데 취직걱정을 하는 수준의 이공계 출신이 너무 많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전 세계에서 이런 국가는 드물어요. 질적인 교육도 잘 안될 뿐더러 엘리트교육과 기능인력교육이 뒤섞여 올바른 이공계교육의 비전 제시도 힘듭니다. 학위를 받지 않고도 숙련 기술자가 되는 '마이스터' 제도 도입을 고려해봐야 합니다."
―정부가 이공계 인재 육성 정책을 편 지 5년이 됐습니다만 별다른 소득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이 선진국과 경쟁하려면 이공계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합니다. 정부가 3불정책(기여입학금,대입 본고사,고교등급제)을 고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대공세 등을 볼 때 기여입학제를 이공계만이라도 허용해서 단기간에 이공계 대학의 질을 높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물론 기여입학생도 어느 정도 수준이 있어야 겠죠. 이를 통해 이공계 장학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나라 안은 물론 나라 밖에서도 우수 이공계 인력을 데려와야 합니다. 정부는 대학의 자율을 확대한다고 하지만 실제적인 행동이 따르지 않는 NAPO(No Action Policy Only)정책에 그칩니다.
연구 중심대학육성이나 이공계 장학금제도확대,BK21사업(대학특성화) 등도 대학의 자율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데 기초부터 안되다 보니 대학별로 나눠먹기 수준에 맴돌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가뜩이나 이공계 기피증이 심해지는 가운데 그나마 이공계를 지원하는 우수 학생도 이 대학 저 대학에 흩어져 선택과 집중이 전혀 안됩니다."
―고등학교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는 소리가 높습니다. 과학고 체제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과학고 설립의 원래 목적은 우수 이공계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것입니다만 과학고 출신들이 의대에 많이 간다고 합니다. 이유를 알고 봤더니 학생 자비로 과학고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자비로 공부하니 의대에 가더라도 정부나 학교에서 할 말이 없는 셈이죠. 과학고를 원래의 취지대로 제대로 육성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폭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공계 교수들이 제자를 키우지 않고 부려먹기만 하고 실험실 분위기는 군대같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 학생이 대학원생은 놀아도 연구실에서 놀아야 한다는 점을 탓했지만 어떻게 보면 실험실에서 놀 수 있으면 좋은 일입니다. 미국 같은 경우도 대학원생들이 따로 노는 날이 없고 지도 교수의 지시에 따릅니다. 대학원생들이 연구비를 받은 만큼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입니다. 이공계 공부를 하는 사람은 우직하게 한가지 일에 매진하는 정신이 필요한데,요즘 신세대는 그것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원생들에게 영어 교육을 시켰어요. 영어로 대화를 하고 강의하니 학생들이 오히려 교과서를 열심히 읽어 오더군요. 훨씬 학생들의 성적이 좋아졌습니다."
―교수 사회의 변화가 느리다는 지적이 많습니다만.
"1980년대 미국 대학 학과장 시절 교수들을 변화시키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교수들은 일단 테뉴어(종신교수)를 받고 나서는 거의 움직이지 않아요. 그만큼 벽이 두껍다는 것이죠."
―신세대들로부터 이공계 과목이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이공계 과목이 절대 어려운 게 아닙니다. 일반적인 선입견이 들어서 그렇죠. 초·중·고교 과학 교사들의 자질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신세대라고 특별한 게 없습니다. 이들도 수학,과학에 취미를 붙이면 얼마든지 이공계 적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수한 교사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공계에 대한 비전을 키우려면 어떤 방안이 있습니까.
"장학금을 많이 주는 것도 좋지만 졸업 후 취업대책을 세우는 게 더 중요합니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줘야 하고 정년도 보장해 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기업들이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도록 규제 축소 등 여건을 정부에서 조성해줘야 합니다."
―인문사회계 출신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소리도 높습니다.
"이공계에서 인문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것만큼 인문사회계에서 이공계 과목을 가르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이들이 과학적인 사고 방식을 길러야 하고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이공계 출신들과 협력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포스텍이 지방에 소재해 힘들다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지방은 복지 의료 교육 등 각종 사회 인프라가 열악합니다. 포항만 하더라도 심장병을 수술하는 전문의가 한 사람밖에 없다고 합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 교수들조차 이 곳을 편안한 정착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끌어들일 방도가 없습니다. 포항을 신소재 특구로 만들게 해달라는 건의를 정부측에 하고 있지만 잘 되고 있지 않습니다."
―포스텍은 산·학협력이 탁월한 학교라고 합니다.
"산·학협력을 하면 그동안 대학이 기업에 봉사한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만 최근 들어 산·학협력 인식이 크게 좋아졌습니다. 산·학협력단이 만들어져 지식재산권에 대한 철저한 보호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제 대학들도 기업과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 상생하는 길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포스텍은 북한과의 관련 공동 연구가 활발합니다. 이 분야에 뛰어든 배경은.
"남북한 간 기술적인 격차가 커지면 통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독일에 체류하면서 경험했습니다. 독일인들은 수입은 많았지만 통일 비용으로 세금을 많이 내 엄청 쪼들렸습니다. 차라리 기술적인 격차를 줄이며 과학자들을 고립시키지 말고 서방세계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통일 후를 대비해선 필요합니다."
포항=오춘호 기자 ohchoon@hankyung.com
이 학생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공계 위기가 우수 인재가 오지 않는 게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동안 이공계를 살려야 한다는 얘기는 수없이 나왔고 정부 차원에서 이공계 살리기 정책을 들고 나온 지도 5년이 지났지만 아직 성과는 기대 이하인 셈이다.
포스텍 박찬모 총장(72)은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번 수석 졸업여학생의 의대 편입이 이공계 위기에 대한 현주소와 관심을 국민들에게 일깨워 전화위복이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무엇보다 이공계 출신들이 사회적인 인식이나 처우 부족으로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며 "이 자긍심이 무너지면 국가의 미래도 암울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다시 한번 이공계 위기론이 일고 있습니다. 어떤 풍조가 고쳐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묵묵히 연구하고 만드는데 전념하는 사람들을 대접하는 실사구시적인 사회분위기'를 만드는데 정치지도자들이 앞장서야 하고 그런 방향으로 사회운동과 인식이 전개되었으면 합니다. 1만명을 먹여 살릴 엘리트 이공계 출신이 많아야 하는데 취직걱정을 하는 수준의 이공계 출신이 너무 많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전 세계에서 이런 국가는 드물어요. 질적인 교육도 잘 안될 뿐더러 엘리트교육과 기능인력교육이 뒤섞여 올바른 이공계교육의 비전 제시도 힘듭니다. 학위를 받지 않고도 숙련 기술자가 되는 '마이스터' 제도 도입을 고려해봐야 합니다."
―정부가 이공계 인재 육성 정책을 편 지 5년이 됐습니다만 별다른 소득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이 선진국과 경쟁하려면 이공계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합니다. 정부가 3불정책(기여입학금,대입 본고사,고교등급제)을 고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대공세 등을 볼 때 기여입학제를 이공계만이라도 허용해서 단기간에 이공계 대학의 질을 높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물론 기여입학생도 어느 정도 수준이 있어야 겠죠. 이를 통해 이공계 장학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나라 안은 물론 나라 밖에서도 우수 이공계 인력을 데려와야 합니다. 정부는 대학의 자율을 확대한다고 하지만 실제적인 행동이 따르지 않는 NAPO(No Action Policy Only)정책에 그칩니다.
연구 중심대학육성이나 이공계 장학금제도확대,BK21사업(대학특성화) 등도 대학의 자율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데 기초부터 안되다 보니 대학별로 나눠먹기 수준에 맴돌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가뜩이나 이공계 기피증이 심해지는 가운데 그나마 이공계를 지원하는 우수 학생도 이 대학 저 대학에 흩어져 선택과 집중이 전혀 안됩니다."
―고등학교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는 소리가 높습니다. 과학고 체제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과학고 설립의 원래 목적은 우수 이공계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것입니다만 과학고 출신들이 의대에 많이 간다고 합니다. 이유를 알고 봤더니 학생 자비로 과학고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자비로 공부하니 의대에 가더라도 정부나 학교에서 할 말이 없는 셈이죠. 과학고를 원래의 취지대로 제대로 육성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폭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공계 교수들이 제자를 키우지 않고 부려먹기만 하고 실험실 분위기는 군대같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 학생이 대학원생은 놀아도 연구실에서 놀아야 한다는 점을 탓했지만 어떻게 보면 실험실에서 놀 수 있으면 좋은 일입니다. 미국 같은 경우도 대학원생들이 따로 노는 날이 없고 지도 교수의 지시에 따릅니다. 대학원생들이 연구비를 받은 만큼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입니다. 이공계 공부를 하는 사람은 우직하게 한가지 일에 매진하는 정신이 필요한데,요즘 신세대는 그것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원생들에게 영어 교육을 시켰어요. 영어로 대화를 하고 강의하니 학생들이 오히려 교과서를 열심히 읽어 오더군요. 훨씬 학생들의 성적이 좋아졌습니다."
―교수 사회의 변화가 느리다는 지적이 많습니다만.
"1980년대 미국 대학 학과장 시절 교수들을 변화시키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교수들은 일단 테뉴어(종신교수)를 받고 나서는 거의 움직이지 않아요. 그만큼 벽이 두껍다는 것이죠."
―신세대들로부터 이공계 과목이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이공계 과목이 절대 어려운 게 아닙니다. 일반적인 선입견이 들어서 그렇죠. 초·중·고교 과학 교사들의 자질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신세대라고 특별한 게 없습니다. 이들도 수학,과학에 취미를 붙이면 얼마든지 이공계 적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수한 교사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공계에 대한 비전을 키우려면 어떤 방안이 있습니까.
"장학금을 많이 주는 것도 좋지만 졸업 후 취업대책을 세우는 게 더 중요합니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줘야 하고 정년도 보장해 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기업들이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도록 규제 축소 등 여건을 정부에서 조성해줘야 합니다."
―인문사회계 출신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소리도 높습니다.
"이공계에서 인문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것만큼 인문사회계에서 이공계 과목을 가르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이들이 과학적인 사고 방식을 길러야 하고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이공계 출신들과 협력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포스텍이 지방에 소재해 힘들다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지방은 복지 의료 교육 등 각종 사회 인프라가 열악합니다. 포항만 하더라도 심장병을 수술하는 전문의가 한 사람밖에 없다고 합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 교수들조차 이 곳을 편안한 정착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끌어들일 방도가 없습니다. 포항을 신소재 특구로 만들게 해달라는 건의를 정부측에 하고 있지만 잘 되고 있지 않습니다."
―포스텍은 산·학협력이 탁월한 학교라고 합니다.
"산·학협력을 하면 그동안 대학이 기업에 봉사한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만 최근 들어 산·학협력 인식이 크게 좋아졌습니다. 산·학협력단이 만들어져 지식재산권에 대한 철저한 보호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제 대학들도 기업과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 상생하는 길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포스텍은 북한과의 관련 공동 연구가 활발합니다. 이 분야에 뛰어든 배경은.
"남북한 간 기술적인 격차가 커지면 통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독일에 체류하면서 경험했습니다. 독일인들은 수입은 많았지만 통일 비용으로 세금을 많이 내 엄청 쪼들렸습니다. 차라리 기술적인 격차를 줄이며 과학자들을 고립시키지 말고 서방세계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통일 후를 대비해선 필요합니다."
포항=오춘호 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