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茂進 <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지난달 27일부터 2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됐다. 2·13 합의서가 채택된 지 2주 만에 열리는 회담이었기에 국내외의 관심이 컸다.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는 여섯 가지로 요약된다. 남북대화 정례화 문제,대북(對北) 지원 및 인도적 문제,경협문제,군사당국자 회담 개최문제,근본문제 및 내정간섭 문제,6자회담 합의사항 이행문제 등이었다. 의제의 대다수가 기존에 합의됐거나 한두 번 이상 거론된 문제이기에 서로 상기시키면서 일정을 협의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6자회담 합의사항 이행,대북지원 규모 및 시기,군사당국자 회담과 열차시험운행 문제 등은 회담기간 내내 쟁점이었다. 남측은 쌀 비료 등의 지원시기를 4월 중순으로 늦추자는 반면 북측은 3월 중으로 가급적 앞당기자는 입장이었다. 또한 남측은 열차시험운행 조기 실행과 연내 개통,군사당국자회담 조기 개최를 제의했으나 북측은 군사문제는 장관급회담 밖의 문제로 논의 자체를 거부했다.

남북한은 이번 회담이 대화중단 7개월 만에 재개되는 것인 만큼 '남북관계 정상화' 목표를 공유하면서 출발했다. 그러나 회담과정에서 양측의 단기적인 이해관계가 상이(相異)함이 드러났다. 남측은 관계정상화를 통해 6자회담 합의사항(9·19공동성명,2·13합의서) 이행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6자회담과 남북대화를 병행 추진해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의 선순환적 구조를 이끌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북측은 관계정상화를 통해 남측으로부터의 지원획득에 중점을 두었다. 6자회담과 남북대화를 별개로 추진해 민족공조에 의한 대미(對美) 압박과 대남(對南) 지원을 획득하려는 속셈이 엿보인다.

지난 2일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은 6개항의 합의사항을 공동보도문 형식으로 발표했다. 주요 합의사항은 당국간회담을 통해 남북문제 해결,2·13 합의서 이행의 공동노력,6·15와 8·15 행사에 대한 당국의 적극 참가,인도적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 노력,경협의 확대·발전 노력 등이다. 합의사항으로 볼 때 이번 회담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지닌다. 첫째 남북한 문제의 당사자 해결원칙이 확인됐다. 둘째 2·13 합의서 이행의 공동노력에 합의함으로써 남북대화와 6자회담의 선순환적 관계의 토대가 마련됐다. 셋째 이산가족 상봉과 적십자회담,경추위,차기 장관급회담의 구제적 일정이 잡힘으로써 당국간 대화가 완전 복원됐다. 그러나 경협의 군사적 보장 차원이 아니라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제2차 국방장관회담이나 장성급 회담 개최에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 회담기간에 남측 회담대표들이 북측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났다. 남측 수석대표는 2·13 합의서의 성실한 이행을 강조했고,김 위원장은 '한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遺訓)이라는 점을 역설했다. 의례적인 예방의 성격을 지니지만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측의 2인자와 직접 의견교환을 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진다.

회담과정에서 옥에 티도 있었다. 일정합의에 따른 회담정례화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종결회의 시간도 지키지 못했다. 진정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일정을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평양에서 개최되는 회담에서 북측의 일정위반은 다반사였다. 밤샘 접촉에서 남측 회담대표들을 지치게 만들거나 일정에 쫓기도록 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전술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남측이 한나라당에 대한 비난과 대선 개입 등 내정간섭 중단을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곧장 노동신문을 통해 특정 당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등 내정간섭을 지속했다. 북측의 상투적인 주장이지만 남측 회담대표들에 대한 결례(缺禮)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남북간에는 수많은 합의와 재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합의사항의 이행률은 그리 높지 않다. 대다수가 북측의 일방적인 지연·중단에 기인한다. 북한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한반도문제는 남북한의 문제이면서 국제적 성격을 지닌다. 남북 간의 합의사항은 국내적 지지와 국제사회의 협력이 있어야 추진 탄력을 받는다. 남측이 상기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