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회색), 솔리드(민무늬), 투 버튼, 슬림 패턴. 올 봄 신사복을 새로 장만하려는 소비자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네 가지 키워드다.

여성복의 '로맨틱 미니멀리즘'이 신사복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남성복도 간결하고 심플한 스타일이 인기를 끌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패션업계에선 남성복의 유행 경향이 여성복을 1~2년가량 늦게 좇아가는 것이 정설이었지만 지난해부터 남성들의 옷입기에 대한 관심이 여성 못지않게 높아지면서 '동기화(synchronization)'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

남성복 매장을 둘러보면 가장 먼저 색상면에서 간결함의 대명사인 회색을 비롯 검정,감색,흰색 등 무채색 계열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5년 전부터 꾸준히 남성복 유행을 지배했던 스트라이프(줄무늬) 패턴은 지고 솔리드(민무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트렌드다.

지난해부터 유행하던 '하이 투 버튼(단추 두 개 중 윗단추의 높이가 예전보다 높아진 스타일)'이 지속적으로 그 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수트의 브이존(앞섶)을 극단적으로 좁게 가져가는 스리 버튼 재킷도 슬슬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미니멀리즘에 충실한 화이트 셔츠와 민무늬 넥타이 등도 무채색 수트와 잘 어울리는 아이템으로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배 나온 아저씨도 '날씬하게'

2007년 남성복 분야를 강타한 미니멀리즘은 1960년대나 1980년대의 스타일과는 조금 다른 면모를 보인다.

'심플'과 '모던'만 강조한 나머지 표준 체형보다 마른 이들만 날렵한 옷맵시를 자랑할 수 있었던 게 과거의 미니멀리즘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인체 곡선이 다소 뭉툭한 사람이라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해주는 새로운 패턴을 적용한 신사복이 대거 출시됐다.

올 봄 신상품은 어깨폭에 비해 허리폭을 과감하게 줄여 라인이 살도록 연출한 상의가 대부분이다.

대신 단추를 잠궜을 때 볼록하게 나온 배가 부담스러워 보이기 쉬운 스리 버튼이 퇴조하고,살짝 풀어놓아도 단정해 보이는 투 버튼을 적용해 허리가 조이는 답답함을 줄였다.

또 상의 앞쪽 몸판에 절개선을 넣거나,라펠(깃) 폭을 조절해 날렵한 느낌을 주도록 하는 등 디테일을 이용해 슬림해 보이는 효과를 주는 제품도 늘었다.

대신 아랫줄을 넣어 착시 현상을 이용, 슬림해 보이도록 해줘 인기를 끌었던 스트라이프 수트는 점차 모습을 감추는 추세다.

옷 모양새를 통해 '슬림 효과'가 나도록 했기 때문에 그 필요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바지는 아래로 갈수록 통이 넓어지는 와이드 팬츠가 인기다.

이 같은 스타일은 허리 라인을 강조해 상대적으로 상체가 슬림하게 보이는 장점이 있다.

◆날씨 더워지면 통기성도 고려해야

색상은 회색 검정 등 모노톤이 대세다.

대신 단조로웠던 무채색을 다양화한 게 특징. 신사복 업체들은 은색에 가까운 '샤이니 그레이'에서 검정색인가 싶은 '다크 그레이'까지 다양한 톤을 적용한 옷을 내놨다.

김경옥 코오롱패션 '맨스타' 디자인실장은 "회색에 베이지가 섞인 '그레이지(그레이+베이지)' 수트까지 나오는 등 회색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어 본인의 피부색에 잘 맞는 톤을 고르는 것도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아울러 네이비(감색)와 화이트도 트렌드 컬러로 떠오르고 있다.

다소 클래식한 느낌의 네이비는 정장쪽에서,화이트의 경우에는 캐주얼 재킷과 넥타이 등 액세서리류에서 많이 눈에 띈다.

소재면에서도 변화가 뚜렷하다.

고급스러운 광택감이 있는 소재가 특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 봄 여름 시즌까지 인기를 끌었던 양모와 실크의 혼방 소재 사용은 다소 감소한 반면 양모 자체에 코팅을 입혀 자연스럽고 은은한 광택을 살린 것이 인기다.

아울러 이번 시즌에 많이 나와 있는 모헤어(산양털) 소재 신사복을 고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 같다.

겨울에 이어 봄에도 예년보다 다소 더운 날씨가 이어질 전망이어서 통기성이 좋은 소재가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출법

올 봄 남성복 연출의 키 포인트는 '부드러움'과 '댄디함'을 어떻게 잘 살릴 것이냐에 달려 있다.

미니멀리즘의 영향으로 수트는 단색에 민무늬,셔츠도 화이트 등이 대세여서 잘못 맞춰 입으면 사무적이고 딱딱한 이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옷을 고를 때 조직감을 잘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색깔과 무늬로는 개성을 살리기 어렵다면 소재의 표면이 주는 질감에서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얘기다.

패션 전문가들은 수트와 셔츠,그리고 넥타이에 각각 소재의 차이를 두라고 조언한다.

비슷한 계열의 색상에 각각 다른 톤을 적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