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중앙부처 국장이 한단계 상위 직급으로의 이동(옛 공무원직제상 2급에서 1급으로 승진)을 뿌리치고 대학교수로 변신했다.

노동부 핵심요직인 근로기준국장을 지내다 학자로 탈바꿈한 하갑래 단국대 법대교수(52).그는 최근 노동부 인사에서 고위공무원단 나급(옛 1급)인 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에 내정됐으나 이를 거절하고 대학교수로 신분을 갈아탔다.

행정고시 23회인 하 교수는 27년간의 공무원 생활 대부분을 노동부에서 보내며 잔뼈가 굵은 노동전문행정가.

고용허가제, 비정규직 법안 등 굵직굵직한 정책들의 입법화를 주도한 그는 공직사회에선 "적어도 차관까지는 무난히 올라갈 사람"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런 그가 '고지'를 눈앞에 두고 덜컥 사표를 제출하자 주변에선 '충격적'인 반응이다.

고위공무원이 별다른 하자가 없는데도 대학교수로 변신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까닭이다.

대학교수 자리는 사회적으로 신망받는 곳이지만 공무원들 사이에선 인기가 덜한 것도 사실이다.

공무원들의 힘이 그만큼 막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1급이나 차관을 마치고 나가면 웬만한 정부 산하 대학의 총장자리도 맡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하 교수는 "고민을 많이 한 뒤 내린 후회없는 결정"이라며 담담하게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자신의 표현대로 '선수 노릇 그만두고 훈수꾼이 된' 이유에 대해 하 교수는 "공무원은 조직논리에 따라 말을 해야 하지만 대학교수는 자신의 소신을 얘기하고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연구할 수 있어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제대로 된 '선수'역할을 하기 힘든 만큼 노사관계와 노동행정의 발전을 위해 "소신껏 연구하고, 소신껏 말하면서" 제대로 된 '훈수꾼'이 되어 보겠다는 설명이다.

행정부의 역할이 예전만 못한 것도 변신 이유 중 하나다.

하 교수는 "몇 년 전만 해도 행정관료들이 모든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했으나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며 "학계나 노사단체의 전문성이 깊어지면서 행정부의 역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외환위기를 맞아 직장인들이 길거리로 쫓겨 났을 때 1년 이상 실업대책추진단장을 맡아 밤잠도 설치면서 실업자 해결에 앞장섰다"며 "당시 노동부 직원들은 그야말로 전쟁터의 군의관 노릇을 했고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그는 바쁘게 일하는 후배들에게 한번쯤 "왜 바쁜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라고 당부했다.

많은 업무로 바쁘지만 공무원들은 '무엇을 왜 하는지'에 대해 더욱 본질적으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충고'로 들렸다.

1992년에 발간,17판까지 낸 '근로기준법'(중앙경제사)은 노동법학서적으로는 드물게 2만권 가까이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과 동국대 대학원(법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