咸仁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거리를 활보하는 아홉 사람 가운데 적어도 한 명 이상이 65세 노인인 고령사회를 지나가노라니,최근 스웨덴 발(發) 흥미로운 뉴스에 귀가 솔깃해진다.

스웨덴에서는 65세부터 74세에 이르는 '젊은 노인'들이 개방적이고 유연한 형태의 새로운 가족을 실험하는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특히 이들 젊은 노인의 경우 1968∼2000년 기간 중 사별(死別)로 배우자를 상실한 비율은 절반으로 감소한 대신,이혼으로 인해 배우자와 헤어진 비율은 4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덕분에 1997년 이후부터는 65∼69세 노인의 경우 이혼 확률이 사별 가능성을 추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와중에 스웨덴에서는 홀로 된 남녀 노인이 각자 자신의 집을 지니고 있으면서 친밀한 관계를 지속해가는,이른바 '별거 동침'(스웨덴어로는 'sarbo',영어로는 'Living Apart Together')이라 불리는 새로운 형태가 결혼 및 동거의 대안(代案)으로 인기를 높여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별거 동침'을 선택하는 노인 커플들로부터 감지되는 특징으로는,자신들의 자유의지에 따라 다(多)살림 가족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자율성이 매우 높다는 점,상대방에 대한 신뢰 및 이해가 깊다는 점,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해 충성을 맹세한다는 점 등이 지목되고 있다.

이들 별거 동침은 전통적인 가족 의무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여성 노인 측으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남성 노인들 편의 전략적 선택이란 해석도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곧 남성도 고령화될수록 사회적 관계의 정서적 측면에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증가하며 동시에 피상적 사회관계를 기피하는 성향이 나타나는 만큼,별거 동침은 남성 노인들의 사회정서적 욕구를 최대화할 수 있는 유리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스웨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노년기 생활양식이 스웨덴과는 질적으로 상이한 한국의 사회문화적 특성과 개인별 생애(生涯) 주기적 특징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의 적합성이 있는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다만 고령사회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노년기 이미지가 여전히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어,노년기 하면 은퇴로 인한 역할 상실,배우자 사별로 인한 정서적 고립,노화(老化)로 인한 건강의 위협,나아가 사회적 차원의 부양(扶養)의 대상이란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획기적인 인식의 변화를 촉구해야 하리라는 생각이다.

노년기에도 삶은 지속되며,삶이 지속되는 한 친밀한 관계의 욕구는 분명 그 중요성이 감퇴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노년기야말로 생애주기 상 그 어느 단계 못지않게 역동적(力動的)인 변화를 경험하는 시기로서 자아 정체성 및 관계성 전반에 걸쳐 의미심장한 변화를 초래(招來)하는 시기로 인식함이 더욱 현실적일 것이다.

나아가 노년기 남성 노인의 소외감에 대해 이제부터라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남성다움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바,친밀성에 관한 한 '학습된 무능력'을 보임은 노년기의 정신 건강에 치명적(致命的)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별히 남성의 경우는 노화가 진행되면서 친소(親疏) 여부를 떠나 잃어버린 친구를 굳이 대체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친구 관계망이 감소되는 경향을 보이며,친밀한 친구관계에 대한 욕구도 감퇴할 뿐만 아니라,가족 대소사를 제외하고는 다양한 사회활동에 대한 관심 또한 희박해지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노년기 삶의 질을 좌우하는 요인이 배우자 혹은 파트너의 존재 유무에 달려 있음은 물론,남성도 여성 못지않게 정서적 욕구 충족이 행복의 중요한 요건임을 고려할 때,노년기 정체성 및 관계성의 본질을 둘러싸고 남녀 노인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설정하는 작업을 게을리해선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