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동구밖 정자나무 밑의 장기판은 언제나 떠들썩했다.

실제 두는 당사자들 보다는 옆에서 관전하는 사람들이 훈수(訓手)를 하며 더욱 시끄럽게 굴기 때문이었다.

약방에 감초처럼 꼭 끼는 훈수꾼들은 '훈수는 빰을 맞아가며 한다'는 얘기가 무색하게,바득바득 우겨가며 판을 주도하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훈수꾼이 아예 자리를 차고 앉는 바람에 주객이 바뀌곤 했다.

훈수는 의도된 것이 아니다.

구경을 하다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

이길 수 있는 길이 있는데,그것을 모르고 고민하는 대국자의 모습이 안타까워 끼어드는 것이다.

팽팽하게 긴장된 대국일수록 단 한 수로 전세가 역전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이쯤되면 대국자와 관전자 사이에 멱살잡이가 오가고 장기는 동네장기가 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는다.

사실 옆에서 보면 장기가 잘 보인다.

'장기가 5급이면 훈수는 3단'이란 말이 딱 들어 맞는 듯하다.

대국자는 승리만을 좇는 나머지 전체의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반면,훈수꾼은 보다 냉정하게 객관적인 입장에서 상대의 수를 판별할 수 있어서다.

누구든 당사자가 되면 주관적인 의지가 앞서 현명한 판단을 하기가 매우 어려운 까닭이다.

요즘 '훈수정치'로 정계가 떠들썩하다.

전·현직 대통령들이 대선후보자 자격을 언급하고 정계개편에 대해 견해를 밝히자,이해관계가 대립된 정파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오는 12월 대선을 앞둔 시점이어서 훈수정치는 예민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치권이든 장기든 훈수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잘못 가는 길을 교정해 주고,좀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문제는 받아들이는 쪽의 자세다.

한편을 꼬드겨 상대편을 몰아붙인다고 생각하면 훈수는 싸움으로 비화될 수밖에 없다.

훈수가 시끄러운 듯하지만 입에 쓴 양약(良藥)임에는 분명하다.

훈수를 싸잡아 비난하기에 앞서 이를 가려 받아들이는 자세가 무척이나 아쉬운 시점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