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相振 < 광운대 교수·중국학 >

대륙세력인 중국과 러시아가 냉전시기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전략적 제휴를 심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훨씬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일본보다도 중국에 시베리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우선적으로 판매한다는 데 합의함으로써,에너지 자원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중국을 배려하고 있다. 최근에는 과거 무력충돌을 벌였던 동부 국경선 유역에 중·러가 대형 수력발전소를 공동으로 건설·운영키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역시 양국이 경제적 실리를 넘어 전략적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중·러관계 강화 추세는 군사안보 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국방장관 회담이 정례적으로 개최되고,중국은 연간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첨단 군사무기와 장비를 러시아로부터 구매하고 있다. 대만독립 저지와 남사군도 영유권 확보, 그리고 해상 수송로 안전유지를 위해 해군력과 공군력 강화를 추진하는 중국은 수호이 전투기와 소브르메니급 구축함 등 러시아제 첨단 군사무기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현재 개최 중인 중국 전인대에서 국방비를 전년 대비(對比) 17.8%나 증액하기로 하는 올해 정부업무보고가 비준될 것으로 보이며,이 중 상당액은 러시아제 무기 구매 등 군사장비의 첨단화에 투입될 것이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이 궁극적으로는 러시아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러시아에서 더 이상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고,중·러는 2005년에 이어 오는 7월에 2차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번 합동 군사훈련에는 푸틴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이 직접 참관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국의 지도부가 확고한 의지를 갖고 군사협력을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공생(共生)할 수 없다'는 중국의 격언처럼,긴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는 중·러는 군사안보 차원뿐만 아니라 경제 및 이념적으로도 대립해 왔다. 중·러가 과거의 갈등관계를 극복하고 군사안보 및 경제 등 제반 영역에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이유는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유럽 확대와 미·일동맹 강화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對)중·러 견제정책 때문이다.

러시아는 과거 자국의 세력권 내에 있었던 폴란드와 체코를 미국이 미사일방어체제에 포함시키고,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까지 미군 기지를 건설하려는 데 극도로 불안해 하고 있다. 자국의 앞마당마저도 미국의 군사기지로 변화하는데 적극 대처해야만 했고,이에 중국과 전략적 협력을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도 동아시아에서 미·일동맹 강화에 대처하고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신장,그리고 에너지자원 확보 등을 위해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세계 및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미·일 대(對) 중·러 대립구도로 고착되는 형국이다. 물론 중·러는 여전히 상대방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고 양국 모두 미국과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 냉전시대의 대립구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에 위치한 한반도의 시각에서 볼 때,미·일동맹의 강화와 중·러의 전략적 협력 심화는 결코 바람직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특히 북핵문제와 대중국 정책 등을 둘러싸고 한·미 동맹의 결속력이 이완되는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나타나고 있는 미·일동맹 강화와 이에 대한 대응전략 차원의 중·러 간의 안보협력 심화는 한국으로 하여금 전략적 운신의 폭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일과 중·러는 자기 편에 서도록 한국에 직간접적으로 강요할 가능성이 있고,한국은 외교적으로 진퇴양난에 빠질 우려가 있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할 수도 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국제정세는 연말 대선(大選)과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 내부문제에만 집중하도록 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예의주시하고,이에 기민하고도 치밀하게 대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