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 간에 지난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적대관계를 청산할 수 있는 물꼬가 트였다.

지난 5,6일 뉴욕에서 열린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1차 실무회담 결과에 대해 양측이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어서다.

특히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논의도 시작키로 하는 등 양측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정상화 회담은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관계 정상화 이전 핵폐기'와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조속 삭제' 등에 대해 입장차이가 여전해 섣부른 낙관은 금물인 것으로 지적된다.


◆무엇을 논의했나

당장 현안인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 교역금지법 적용 배제 방안은 물론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 해제에 대해 비교적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BDA 계좌 해제의 경우 '2·13 합의대로 30일 안에 해결한다'는 데 공감해 조만간 가시적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2·13 합의'에 포함됐는지 여부를 두고 논란을 빚고 있는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논의키로 합의,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이를 위해 양측은 전문가 협의를 시작키로 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HEU에 대해 해명의 필요성을 먼저 제기해 회담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조성했다.

관계 정상화에 대해선 북한이 더 적극적이었다는 후문이다.

북한은 중간단계인 연락사무소 설치에 반대해 가급적 가까운 시일 안에 양국 간 수교가 이뤄지기를 희망했다.

◆테러지원국 조속 삭제와 선(先)핵폐기가 쟁점

북한은 "당장 오는 4월에 발표될 미 국무부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빼 달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지원국에서 삭제되면 장기저리 차관을 받을 수 있는 데다 무기수출금지 대상에서 빠지게 돼 실질적인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미국은 이에 대해 행정부와 의회가 국내법에 따라 필요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데다 핵폐기 초기 이행조치 실천과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 등 선행과제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요구한 '관계 정상화 전 핵폐기'도 쟁점이 됐다.

북한은 이에 대해 9·19 및 2·13 합의를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는 원론을 밝히는 데 그쳤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평화체제 구축과 회담 전망

양측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메커니즘을 만들기 위한 논의도 시작키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오는 19일 열릴 6자회담과 4월 중 열릴 6개국 장관급 회담에서 이 문제가 본격 논의될 공산이 크다.

양측은 당장의 현안뿐만 아니라 핵폐기 이후의 '큰 그림'까지 논의한 셈이다.

그만큼 분위기가 좋았다는 얘기다.

그런 만큼 회담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과감한' 이행조치를 내놓고 미국도 이에 '파격적인' 지원조치로 화답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협상이 진행될수록 테러지원국 우선 삭제나 우선 핵폐기 등에 대해 입장차가 커질 것으로 보여 낙관은 금물이다.

HEU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북한은 이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북한이 핵 및 핵시설을 신고하는 단계에 접어들 경우 결정적인 고비를 맞을 공산이 크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