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잠룡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심각한 민심 이반과 한나라당 '빅3'의 위세에 눌려 숨죽여온 범여권의 대선 예비주자들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부상을 계기로 각개 약진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여권의 집중적인 러브콜을 받고 있는 정 전 총장이 시간이 갈수록 대선 참여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 놓는 상황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대권 도전에 대한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여기에 김혁규 의원과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김원웅 의원 등도 가세할 태세다.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천정배 의원 정도가 경쟁해온 구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한다.

잠룡의 움직임 중 단연 관심은 정운찬 전 총장의 거취다.

범여권의 지지율이 바닥을 친 상황에서 그의 참여여부가 경선전의 흥행을 가름할 것이기 때문이다.

올 1월까지만 해도 "대통령에 관심이 없으며 후보로 나설 생각이 없다"고 했던 정 전 총장은 2월부터 "내일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정치 절대 안 한다고 말 못한다"며 대선참여 가능성을 내비쳤고 이 때부터 범여권은 그의 참여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정 전 총장은 7일 서울대 경제학부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의에서 "대선 출마 생각을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며 "그러나 지금은 내가 (대통령) 감이 되는지,당선될 수 있는지,당선된 다음에 잘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좀 더 두고보자"고 말했다.

그는 최근 통합신당의 한 의원을 만나 신당참여를 제의받는 등 각계 인사와 폭넓게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출마하더라도 범여권의 단일후보를 희망할 것으로 보이는 그로서는 범여권의 단일대오 형성이 조기에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이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가 "열린우리당의 오픈프라이머리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학기를 마칠 것"이라고 결단의 시기를 6월이후로 늦춰잡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

헌정 사상 첫 여성총리를 지내고 10개월여 만에 열린우리당에 복귀한 한 전 총리는 대선행보를 공식화했다.

한 전 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은 그냥 총리일에만 몰두하고 집중했는데 정치인으로서 제 자리로 돌아가는 만큼 이제부터는 열심히 그런 행보에 대해 고민해보겠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퇴임 전에 각계 인사 1000여명에게 편지를 보내 이임 인사를 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김혁규 의원은 영남 대표주자를 자임하면서 대선행보에 뛰어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김 의원은 4월 출마선언을 목표로 각계 인사와 두루 접촉하고 있다.

김원웅 의원은 이날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개혁·민족진영의 후보로 나서겠다"며 대선 경선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도 잠재 후보다.

유 장관이 당측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당적을 유지한 채 최근 목소리를 내는 것도 대선행보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분석된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