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 여행 중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초현실주의작가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사전 지식 없이 마주친 작품들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이번에 마그리트 특별전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어 무척 반가웠다.

그의 대표적 회화를 비롯해 포스터 사진 영상작품들이 다양하게 전시되고 있다.

우리말로 설명이 쓰여 있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착상에 여전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온기마저 느껴지는 생생한 발과 가죽 장화가 결합한 작품,'붉은모델' 발 끝에 먼저 시선을 두고 점차 위쪽으로 올려다 보면 발이 점점 장화로 변해가고,장화 위쪽에서 아래로 시선을 옮기면 무생물이 점점 생명력 있는 발이 된다.

두 물체가 하나로 결합된 형태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사실적이어서 기이하고 섬뜩할 지경이었다.

마그리트는 구두가 발이 되도록 하고 발이 구두가 되도록 변화시켰다.

즉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관습적인 시각을 바꾸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도록 만든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고정관념의 집착에서 탈출할 것을 은근히 일러주는 것 같기도 했다.

또 인상적인 작품은 '빛의 제국'이다.

밝은 하늘 아래에 캄캄한 밤의 풍경이 있는 낮과 밤이 동시에 공존하는 그림이다.

커다란 나무들과 지붕의 검은 실루엣이 낮의 푸른 하늘과 합해져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가로등과 창문에 비치는 불빛은 밤을 강조하면서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고 낮의 환한 하늘과 대조되어 경이롭고 신비한 느낌을 준다.

마그리트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는 사물들을 엉뚱한 장소에 배치시키고,형태를 확대하고,물체를 무중력 상태로 만들어 공중에 띄우는 등의 표현 방법을 쓰기도 해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사물 고유의 이미지를 완전히 달라지게 한다.

반대 개념을 결합시키고 또 우연과 무의식을 근간으로 우리를 환상이나 꿈의 세계로 인도하며 우리로 하여금 그림이 주는 의미들을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얼마 전 서울에 있는 모백화점을 리모델링하면서 중절모를 쓴 크고 작은 수많은 신사가 흐릿한 허공에 떠있는 것 같은 마그리트의 '겨울비'로 외관 차단막 전체를 장식해서 눈길을 끌었다.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그의 작품에 내재하는 생각의 전환,창조적 마인드는 이 시대에 정치 경제 교육 등 많은 분야에서도 그 중요성이 계속 강조되고 있다.

서울에서 세계적인 대가의 작품들을 이렇게 편안히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이러한 전시를 유치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경제력과 문화 수준이 높아졌다는 사실이 새삼 감격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