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에 부당 공동행위(담합) 혐의에 대한 자수(自首)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10년 넘게 공고하게 구축됐던 석유화학업계의 협조체제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자진신고자 감면제도(Leniency Program) 앞에 맥없이 무너진 데 이어 결제정보 처리업체(밴·VAN)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담합.인하 한 혐의를 받고 있는 몇몇 카드사도 공정위에 최근 관련혐의를 자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조금이라도 담합의 소지를 안고 있는 업계는 한 개 업체라도 자진신고 할 경우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일부 카드사 담합 자진신고

8일 공정위와 금융계에 따르면 최근 일부 카드회사가 공정위에 담합사례를 자진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진신고한 내용은 공정위가 작년 말부터 진행해오던 밴사에 대한 일부 전업계 카드사의 불공정행위에 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공정위의 조사를 받던 전업계 카드사 가운데 LG카드와 삼성카드가 공정위에 담합혐의를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에 공정위의 조사망에 포착된 건은 2004년 11월부터 2005년 1분기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카드업계의 밴사에 대한 수수료 인하 건이다.

카드업계는 결제정보 처리업체인 밴사에 결제 건수당 일정액의 수수료를 지급한다.

그런데 2004~2005년 당시 카드사들은 이 수수료를 100원에서 70원으로 잇따라 내렸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카드업계가 공동으로 업계에 부당한 수수료 인하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심각한 경영위기에 내몰렸던 중소 밴사 가운데 일부가 공정위에 관련 혐의를 제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호남석화 과징금 면제가 계기

금융계에서는 공정위가 최근 석유화학업체 10곳에 대해 105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과정에서 호남석유화학이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통해 100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면제받은 게 카드업계의 '자수 결심'을 이끌어낸 계기가 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1년 동안 담합을 통해 생산제품에 대한 가격을 통제해왔던 석유화학업계는 호남석화 삼성토탈 삼성종합화학 등의 자진신고를 통해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받게 됐다.

석유화학 업계에 대한 과징금 부과 발표 당시 "자진신고자 감면제도가 앞으로 담합 혐의를 입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던 정재찬 공정위 카르텔조사단장의 예측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문제는 담합 혐의를 받고 있는 업체들이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씻을 수 없는 반목과 불신에 빠져들었다는 점.석유화학업계의 경우 아직까지 자진신고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신용카드업계에도 불신이 싹트는 분위기다.

담합혐의를 받고 있는 전업계 신용카드사들 가운데 LG카드와 삼성카드를 제외한 나머지 카드사들은 여전히 "비슷한 시기에 수수료 인하가 이뤄져 담합을 한 것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지만,업계 관계자가 모여 밴사 수수료 인하를 모색한 적은 절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LG와 삼성이 공정위 조사에 협조해 혐의를 일찌감치 털고 과징금 부과를 피하기 위해 '오버액션'을 취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담합 적발 급증하나

산업계는 자진신고자 감면제도가 위력을 발휘함에 따라 앞으로 담합 혐의 적발 건수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장 불공정거래 여부를 조사받고 있는 교복업계나 인터넷 포털업계 등을 중심으로 '혹시 경쟁업체가 있지도 않았던 불공정거래까지 부풀려 자수해버리는 것 아니냐'는 근심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지철호 공정위 홍보관리관은 "카르텔의 경우 조사대상 업체의 자진신고가 없다면,혐의 입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앞으로 카르텔 적발건수가 급증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