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총장 서남표)이 연구·개발(R&D) 투자 자금을 시장에서 직접 조달하는 일본 도쿄대 모델을 도입한다.

KAIST는 최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올 하반기에 착공하는 정보기술(IT)융합,바이오기술(BT)융합 등 7개 분야 연구 기능을 수행할 최첨단 연구소인 'KI(KAIST Institute)' 설립을 위해 금융회사에서 직접 자금을 차입키로 했다고 8일 밝혔다. 김우식 과학기술부총리는 이와 관련,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예산처와 협의한 뒤 이달 말 열릴 KAIST 정기 이사회에서 이 사안을 정식 승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학이 금융권 차입을 통해 R&D 등의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특수법인으로 전환한 도쿄대가 이런 방식의 R&D 자금 확보 방안을 확정해 주목받았다. 도쿄대는 먼저 신용평가회사인 R&I로부터 최우수(AAA) 신용등급을 받은 뒤 장기 저리 자금을 시장에서 확보하고 이를 기술료 등으로 상환키로 하는 모델을 채용했다. 이 자금을 활용해 해외에 연구소 100개를 짓고 외국인 교수 비율을 현재의 다섯 배로 확장하는 글로벌 대학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KAIST는 총 350억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될 KI 설립과 연구인력 유치 등을 위해 주거래은행인 우리은행에서 150억원을 빌리기로 했다. 나머지 200억원은 내년 예산에 반영돼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우리은행은 KAIST의 성장성과 현재 수입,잠재력 등을 인정해 최고 신용등급(AAA)을 매겨 장기 저리(4% 선)로 빌려주기로 했다고 KAIST 관계자는 말했다.

KAIST는 차입금 150억원에 대해 기술료 수입,기부금과 후원금,등록금 등 자체적으로 확보한 자금으로 원리금을 갚는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부분적이긴 하나 국립대의 예산 확보와 집행에 대한 '홀로서기'의 한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국내 대학 관계자는 "KAIST의 금융권 차입 시도는 대학이 독자적인 예산을 짜고 집행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대학이 시장에서 평가를 받아 재원 마련을 다각화하는 차원에서 획기적인 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KI는 서남표 총장이 지난해 취임하면서 내세운 '2015년 이공계 세계 톱10대학 진입'에 대한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 지난해 말부터 설립이 추진돼 왔다. 연구 분야는 IT융합,BT융합,복합시스템설계,나노융합,엔터테인먼트공학,청정에너지,미래도시설계 디자인 등 7개다.

오춘호 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