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sumer] PRODUCER 마케팅 벤치마크…두산 알칼리 소주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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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된 니즈 읽어 1년 새 시장 점유율 3배로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 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 날을 시작하고 있다.”
㈜두산에서 생산하고 있는 저도 소주 ‘처음처럼’의 이름이 유래한 신영복 교수의 시(詩) 전문이다.
‘처음처럼’은 탄생 당시 소주의 브랜드 명으로선 파격이었다. 그때까지 소주 이름은 보통 세 글자의 명사로 돼 있었다. 참이슬과 산소주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처음처럼’은 네 글자의 부사형으로 이 같은 기본 법칙을 한꺼번에 깨버렸다. ‘처음처럼’은 3개의 전문 네이밍 업체와 사내 공모를 통해 제시된 2000여 개의 안 가운데 선택됐다. 중간결선에서 350개가 후보에 올랐고 이중 다시 3개가 추려졌다. 그리고 ‘처음처럼’이 최종 낙점을 받았다.
브랜드팀 이정태 부장은 “처음 제품명을 들었을 때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며 “물론 어감도 좋지만 술 마시기 전 상태인 ‘처음처럼’, 또 산성 안주를 중화시켜 몸 상태를 ‘처음처럼’ 만들어 준다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기에 한 눈에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소비자 조사로 기회 파악
다양한 소주를 내놓으며 시장 회복 시도를 거듭하던 두산은 지난 2005년 마켓조사를 실시했다. 당시는 경쟁사의 C소주가 이미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조사결과는 의외의 희망적 메시지를 던졌다. 한때 35%에 달했던 C소주의 전국시장 점유율이 24%까지 떨어진 것이었다. 시장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김일영 마케팅 부문 상무는 이 같은 변화를 “오랫동안 한 제품만을 이용하던 소비자들이 식상함을 느끼고 다른 주류로 옮겨가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했다”고 말한다.
두산은 또 술문화의 변화에도 주목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소주는 우울함과 슬픔을 달래주는 친구였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취향은 변했다. 유기농 채소 등 몸에 좋은 먹을거리를 찾고, 술은 가볍게 즐기는 대상이 됐다. 술을 마시더라도 가급적 몸에 좋다는 술을 찾게 됐다. 음주 스타일도 변했다. 응어리진 스트레스를 쓸어버리려는 듯 서둘러 마시는 폭주에서 탈피해 술이 회식자리의 활력소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포지셔닝과 콘셉트
새로운 개념의 소주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구상이 있었다. 그때까지의 일반적인 접근법은 첨가물을 바꿔 보는 것. 이는 똑 같은 콘셉트의 제품을 만들되 조금이라도 더 낳은 품질로 만들어 보겠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미세조정만으로는 이미 시장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경쟁제품을 이길 수는 없었다. 소주의 전체 구성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1%에 불과한 첨가물이나 알코올의 도수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소비자가 느낄 수 있는 확연한 차이를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두산이 그때까지 시장에서 고전한 것은 이 같은 미세조정적 접근법에 기인한 것인지 모른다는 판단이 섰다. 그리고 근본적인 변화만이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주는 통상 1%의 첨가물, 20%의 알코올, 79%의 물로 이뤄진다. 때문에 소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을 바꿔야 차이가 나타난다는 결론이 섰다.
‘물로 차이를 만든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현재의 CEO인 한기선 사장의 역할이 지대했다. 한 사장은 진로 재직시절 ‘참이슬’을 만들었던 주인공. 당시 한 사장은 ‘소주=참이슬’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낼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이후 OB맥주의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한 사장은 갑작스러운 대장암 선고를 받았다. 투병 과정에서 그는 소위 ‘절반 의사’가 될 정도로 해박한 의학적 지식을 갖게 됐다. 알칼리 환원수에 대한 정보도 이때 얻었다.
이후 암을 극복하고 두산으로 자리를 옮길 때 이미 한 사장의 머리에는 알칼리 환원수로 술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이 자리잡았고 이를 실행해 옮긴 것이 ‘처음처럼’이다.
소주 원료로 알칼리 환원수를 쓰자고 하니 처음엔 대부분이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그렇게까지 건강에 신경을 쓰는 소비자라면 ‘약을 먹지 소주를 먹겠느냐’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소주 시장의 기존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는 없다는 생각에 알칼리 소주를 고집했다.
알칼리 환원수는 건강을 중시하는 시대의 흐름과도 맞아 떨어졌다. 알칼리수는 자연 미네랄이 많이 포함돼 있고 술안주가 갖는 산성을 중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안주는 약한 산성을 띤다. 소 안심구이는 pH 5.88, 삼겹살 구이 6.28, 동태찌개 6.13, 콩나물 무침 6.06 등으로 고기류나 찌개 종류는 모두 산성이다. 그러나 ‘처음처럼’은 pH 8.3의 약 알칼리수다. 이들을 섞어 먹으면 두 가지는 자연스럽게 중화된다는 개념이 적용된 것이다.
이 같은 콘셉트에 바탕을 두고 두산은 25~35세의 연령대를 시장 타깃으로 설정했다. 시장 진입이 쉽고 저도 소주의 부드러운 느낌이 부담없는 술을 찾는 젊은층에게 잘 맞기 때문이었다. 실상 소주의 주요 소비자층은 30대 후반에서 40대다. 또 소주 시장에도 전체 인구의 20% 정도에 달하는 이들 주요 소비자가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파레토의 법칙’이 존재한다. 그러나 두산은 30대 후반에서 40대의 연령층을 타깃으로 하지 않았다. 이미 40대에 도달한 소비자는 기존 소주의 입맛에 길들여 있었기에 좀처럼 새로운 제품으로 옮겨가지 않아서다. 아직은 유동적인 입맛을 가진 좀 더 젊은층에게 초점을 맞췄다. 자신의 제품 개념에 맞으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틈새시장을 노린 것이다. 특히 이들은 수년 뒤에는 주요 소비자층으로 발전할 것이기에 메리트는 더했다.
제품개발
제품의 콘셉트가 정해졌다고 해서 곧바로 신제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두산은 제품의 콘셉트를 정한 뒤에도 1년 6개월 동안 무려 445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31회의 조사를 실시했다. 제품의 콘셉트를 3번이나 재검토했고 맛에 대한 테스트는 2200명을 대상으로 22회에 걸쳐 실시했다.
이 밖에도 패키지 디자인에 대한 조사 3회, 포지셔닝 조사 3회 등 검토에 또 검토를 거듭했다. 결국 소주다운 맛을 지키면서도 부드러운 맛을 구현했고 자체 테스트에서도 경쟁제품보다 맛이 뛰어나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해결해야 할 커다란 숙제가 있었다. 대량생산하자니 엄청난 양의 알칼리 환원수가 필요했다. 그러나 국내 어디를 둘러봐도 알칼리 환원수를 대량 공급할 수 있는 기계는 없었다. 수소문 끝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일본에는 이미 알칼리수가 대중화돼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알칼리 이온수기가 보급된 일본에도 산업용 기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시장을 뒤진 끝에 한 업체를 발견해 주문제작에 들어갔다. 1시간에 5000t의 알칼리수를 생산할 수 있는 초대형 기계가 완성됐다. 관련 특허도 취득했다. 처음에 3대를 도입했고 지금은 2대를 추가해 모두 5대로 늘어났다.
유통망의 한계 극복
지난 2005년 ‘처음처럼’의 제품 콘셉트가 정립될 당시 하이트맥주㈜는 진로를 인수했다. 주류 업계의 두 공룡이 결합하면서 슈퍼 공룡이 탄생한 것이다. 하이트는 전국 시장의 60%를, 진로는 56%를 각각 점유하고 있었다.
특히 서울만을 보면 진로는 시장의 93%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는 유통망을 통한 판매가 절대적인 주류업계 상황을 고려할 때 두산에는 치명적 상황이었다. 경쟁업체에서 유통채널을 장악하고 있다면 새로운 제품을 내놓아 봐야 시장에 제대로 유통시킬 수 있을까마저도 의문시 됐다. 두산은 이 같은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한 가지 절대원칙을 정했다. 소비자에게는 마셔야 될 이유가 분명하고 유통채널엔 팔아야 할 이유가 분명한 제품을 내놓는 길밖에 없었다. ‘처음처럼’의 모든 마케팅 과정은 이 같은 원칙에 기반을 두었다.
시장 공략
제품이 출시되자 ‘처음처럼’의 맛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샘플링이 실시됐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시작된 샘플링은 횟수를 거듭하면서 업소와 가정, 일반 소비자 등으로 퍼져 나갔다.
시장 타깃에 맞춰 서울 지하철 강남역 인근 등 젊은층이 즐겨 찾는 지역에서 대규모 샘플링 행사를 벌였다. 새로운 것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젊은이들에게 신제품을 직접 느껴보게 하려는 체험마케팅이었다. 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미용실이나 카센터 등에서 설명회를 갖고 미니어처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렇게 실시된 샘플링 대상은 일반소비자 약 130만 명을 포함해 총 150만 명을 넘어섰고 ‘처음처럼’은 소비자들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제품명이 됐다. 유통업체들에 대한 대책도 마련했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1, 2차 거래처인 유통업자의 마진을 극대화함으로써 신제품 확산의 명분을 제공하고 이들을 이른 시간 안에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두산은 주류업계 관계자들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두산은 거래처 마진을 대폭 늘리는 가격정책을 발표했다. 내용은 1차 유통업체에 공급하는 ‘처음처럼’의 박스당 출고가격을 경쟁제품보다 2100원 낮게 공급한다는 것. 이렇게 될 경우 2차 거래처 공급가격은 1000원이 싸진다. 소매가격이 같기 때문에 결국 유통업체들은 그만큼 이익을 더 얻게 됐다. 두산으로선 출고가격의 약 10%에 해당하는 큰 폭의 마진을 포기하는 고육지책이었으나 업체들은 ‘처음처럼’을 유통할 충분한 이유를 갖게 됐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도 병행했다. 새로운 제품에 승패를 걸고 모든 리소스를 신제품에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제품인 ‘산소주’는 시장에서 그대로 유지하며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비했다.
결과
철저한 사전준비를 거쳐 신제품이 출시되자 시장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2006년 1월 전국 시장 점유율이 5.2%에 그쳤던 두산은 ‘처음처럼’ 출시 한 달 만에 8.3%를 달성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전국 소주 시장의 13.7%를 차지했다. 특히 서울에서는 시장 점유율이 25%에 달했다. 판매물량에서도 괄목할 만한 증가세를 보였다. 두산은 51일 만에 100만 박스를 판매하는 쾌거를 올렸다. 두산의 소주 브랜드가 100만 박스를 넘은 것은 ‘그린’ 소주 이후 7년 만에 처음이었다. 생산 라인 가동이 속도를 더했다. 3개 라인 중 1개 라인이 쉬고 있었던 강릉공장은 모든 라인을 풀가동하고도 모자라 2개 라인을 추가로 설치했다. 고객의 잠재 욕구를 찾아내고 기존 관행을 깨뜨렸던 과감한 변신의 과실은 달콤했다.
장유택 편집장 chang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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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아이디어 그룹
두산에는 대학생 아이디어그룹이라는 마케터 그룹이 있다. 대학생 아이디어그룹은 ‘처음처럼’ 마케팅 PR 공모전을 준비했던 대학생들의 인맥을 형성해 주고 대학생들의 커뮤니티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시작했다. ‘처음처럼’ 카페에서 소모임 형식으로 시작한 5명의 그룹은 26명으로 늘어나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췄다. 정식 아이디어그룹으로 발전한 이들은 3월 초에 1기 활동을 마무리했다. 대학생 아이디어그룹의 활동은 2주에 한 번씩 하는 전체 회의와 개별적으로 진행되는 팀회의로 구성된다.
전체 회의는 각자 할당된 개인과제를 준비하여 발표하는 시간과 ‘처음처럼’의 마케팅실무진 강의, 학생들의 브레인스토밍 등으로 이뤄진다. 개별 팀 모임에서는 자율적인 회의를 통해 팀별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기수마다 2번씩의 팀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임직원들 앞에서 팀 프로젝트의 결과를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또 친목을 위한 워크숍, 공장 견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곁들여 진다. ‘처음처럼’ 대학생 아이디어그룹은 3월 중 전국 대학의 2, 3학년생을 대상으로 2기 멤버를 선발, 확대 운영한다. 한 기수는 4~5개월간 활동하게 된다. 두산은 향후 이 그룹의 기수별 네트워크는 물론이고 실무자들과의 지속적인 네트워크도 유지할 예정이다.
[똑똑한 상품·현명한 소비자의 경제지-프로슈머]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 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 날을 시작하고 있다.”
㈜두산에서 생산하고 있는 저도 소주 ‘처음처럼’의 이름이 유래한 신영복 교수의 시(詩) 전문이다.
‘처음처럼’은 탄생 당시 소주의 브랜드 명으로선 파격이었다. 그때까지 소주 이름은 보통 세 글자의 명사로 돼 있었다. 참이슬과 산소주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처음처럼’은 네 글자의 부사형으로 이 같은 기본 법칙을 한꺼번에 깨버렸다. ‘처음처럼’은 3개의 전문 네이밍 업체와 사내 공모를 통해 제시된 2000여 개의 안 가운데 선택됐다. 중간결선에서 350개가 후보에 올랐고 이중 다시 3개가 추려졌다. 그리고 ‘처음처럼’이 최종 낙점을 받았다.
브랜드팀 이정태 부장은 “처음 제품명을 들었을 때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며 “물론 어감도 좋지만 술 마시기 전 상태인 ‘처음처럼’, 또 산성 안주를 중화시켜 몸 상태를 ‘처음처럼’ 만들어 준다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기에 한 눈에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소비자 조사로 기회 파악
다양한 소주를 내놓으며 시장 회복 시도를 거듭하던 두산은 지난 2005년 마켓조사를 실시했다. 당시는 경쟁사의 C소주가 이미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조사결과는 의외의 희망적 메시지를 던졌다. 한때 35%에 달했던 C소주의 전국시장 점유율이 24%까지 떨어진 것이었다. 시장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김일영 마케팅 부문 상무는 이 같은 변화를 “오랫동안 한 제품만을 이용하던 소비자들이 식상함을 느끼고 다른 주류로 옮겨가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했다”고 말한다.
두산은 또 술문화의 변화에도 주목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소주는 우울함과 슬픔을 달래주는 친구였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취향은 변했다. 유기농 채소 등 몸에 좋은 먹을거리를 찾고, 술은 가볍게 즐기는 대상이 됐다. 술을 마시더라도 가급적 몸에 좋다는 술을 찾게 됐다. 음주 스타일도 변했다. 응어리진 스트레스를 쓸어버리려는 듯 서둘러 마시는 폭주에서 탈피해 술이 회식자리의 활력소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포지셔닝과 콘셉트
새로운 개념의 소주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구상이 있었다. 그때까지의 일반적인 접근법은 첨가물을 바꿔 보는 것. 이는 똑 같은 콘셉트의 제품을 만들되 조금이라도 더 낳은 품질로 만들어 보겠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미세조정만으로는 이미 시장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경쟁제품을 이길 수는 없었다. 소주의 전체 구성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1%에 불과한 첨가물이나 알코올의 도수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소비자가 느낄 수 있는 확연한 차이를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두산이 그때까지 시장에서 고전한 것은 이 같은 미세조정적 접근법에 기인한 것인지 모른다는 판단이 섰다. 그리고 근본적인 변화만이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주는 통상 1%의 첨가물, 20%의 알코올, 79%의 물로 이뤄진다. 때문에 소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을 바꿔야 차이가 나타난다는 결론이 섰다.
‘물로 차이를 만든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현재의 CEO인 한기선 사장의 역할이 지대했다. 한 사장은 진로 재직시절 ‘참이슬’을 만들었던 주인공. 당시 한 사장은 ‘소주=참이슬’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낼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이후 OB맥주의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한 사장은 갑작스러운 대장암 선고를 받았다. 투병 과정에서 그는 소위 ‘절반 의사’가 될 정도로 해박한 의학적 지식을 갖게 됐다. 알칼리 환원수에 대한 정보도 이때 얻었다.
이후 암을 극복하고 두산으로 자리를 옮길 때 이미 한 사장의 머리에는 알칼리 환원수로 술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이 자리잡았고 이를 실행해 옮긴 것이 ‘처음처럼’이다.
소주 원료로 알칼리 환원수를 쓰자고 하니 처음엔 대부분이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그렇게까지 건강에 신경을 쓰는 소비자라면 ‘약을 먹지 소주를 먹겠느냐’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소주 시장의 기존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는 없다는 생각에 알칼리 소주를 고집했다.
알칼리 환원수는 건강을 중시하는 시대의 흐름과도 맞아 떨어졌다. 알칼리수는 자연 미네랄이 많이 포함돼 있고 술안주가 갖는 산성을 중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안주는 약한 산성을 띤다. 소 안심구이는 pH 5.88, 삼겹살 구이 6.28, 동태찌개 6.13, 콩나물 무침 6.06 등으로 고기류나 찌개 종류는 모두 산성이다. 그러나 ‘처음처럼’은 pH 8.3의 약 알칼리수다. 이들을 섞어 먹으면 두 가지는 자연스럽게 중화된다는 개념이 적용된 것이다.
이 같은 콘셉트에 바탕을 두고 두산은 25~35세의 연령대를 시장 타깃으로 설정했다. 시장 진입이 쉽고 저도 소주의 부드러운 느낌이 부담없는 술을 찾는 젊은층에게 잘 맞기 때문이었다. 실상 소주의 주요 소비자층은 30대 후반에서 40대다. 또 소주 시장에도 전체 인구의 20% 정도에 달하는 이들 주요 소비자가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파레토의 법칙’이 존재한다. 그러나 두산은 30대 후반에서 40대의 연령층을 타깃으로 하지 않았다. 이미 40대에 도달한 소비자는 기존 소주의 입맛에 길들여 있었기에 좀처럼 새로운 제품으로 옮겨가지 않아서다. 아직은 유동적인 입맛을 가진 좀 더 젊은층에게 초점을 맞췄다. 자신의 제품 개념에 맞으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틈새시장을 노린 것이다. 특히 이들은 수년 뒤에는 주요 소비자층으로 발전할 것이기에 메리트는 더했다.
제품개발
제품의 콘셉트가 정해졌다고 해서 곧바로 신제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두산은 제품의 콘셉트를 정한 뒤에도 1년 6개월 동안 무려 445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31회의 조사를 실시했다. 제품의 콘셉트를 3번이나 재검토했고 맛에 대한 테스트는 2200명을 대상으로 22회에 걸쳐 실시했다.
이 밖에도 패키지 디자인에 대한 조사 3회, 포지셔닝 조사 3회 등 검토에 또 검토를 거듭했다. 결국 소주다운 맛을 지키면서도 부드러운 맛을 구현했고 자체 테스트에서도 경쟁제품보다 맛이 뛰어나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해결해야 할 커다란 숙제가 있었다. 대량생산하자니 엄청난 양의 알칼리 환원수가 필요했다. 그러나 국내 어디를 둘러봐도 알칼리 환원수를 대량 공급할 수 있는 기계는 없었다. 수소문 끝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당시 일본에는 이미 알칼리수가 대중화돼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알칼리 이온수기가 보급된 일본에도 산업용 기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시장을 뒤진 끝에 한 업체를 발견해 주문제작에 들어갔다. 1시간에 5000t의 알칼리수를 생산할 수 있는 초대형 기계가 완성됐다. 관련 특허도 취득했다. 처음에 3대를 도입했고 지금은 2대를 추가해 모두 5대로 늘어났다.
유통망의 한계 극복
지난 2005년 ‘처음처럼’의 제품 콘셉트가 정립될 당시 하이트맥주㈜는 진로를 인수했다. 주류 업계의 두 공룡이 결합하면서 슈퍼 공룡이 탄생한 것이다. 하이트는 전국 시장의 60%를, 진로는 56%를 각각 점유하고 있었다.
특히 서울만을 보면 진로는 시장의 93%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는 유통망을 통한 판매가 절대적인 주류업계 상황을 고려할 때 두산에는 치명적 상황이었다. 경쟁업체에서 유통채널을 장악하고 있다면 새로운 제품을 내놓아 봐야 시장에 제대로 유통시킬 수 있을까마저도 의문시 됐다. 두산은 이 같은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한 가지 절대원칙을 정했다. 소비자에게는 마셔야 될 이유가 분명하고 유통채널엔 팔아야 할 이유가 분명한 제품을 내놓는 길밖에 없었다. ‘처음처럼’의 모든 마케팅 과정은 이 같은 원칙에 기반을 두었다.
시장 공략
제품이 출시되자 ‘처음처럼’의 맛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샘플링이 실시됐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시작된 샘플링은 횟수를 거듭하면서 업소와 가정, 일반 소비자 등으로 퍼져 나갔다.
시장 타깃에 맞춰 서울 지하철 강남역 인근 등 젊은층이 즐겨 찾는 지역에서 대규모 샘플링 행사를 벌였다. 새로운 것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젊은이들에게 신제품을 직접 느껴보게 하려는 체험마케팅이었다. 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미용실이나 카센터 등에서 설명회를 갖고 미니어처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렇게 실시된 샘플링 대상은 일반소비자 약 130만 명을 포함해 총 150만 명을 넘어섰고 ‘처음처럼’은 소비자들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제품명이 됐다. 유통업체들에 대한 대책도 마련했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1, 2차 거래처인 유통업자의 마진을 극대화함으로써 신제품 확산의 명분을 제공하고 이들을 이른 시간 안에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두산은 주류업계 관계자들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두산은 거래처 마진을 대폭 늘리는 가격정책을 발표했다. 내용은 1차 유통업체에 공급하는 ‘처음처럼’의 박스당 출고가격을 경쟁제품보다 2100원 낮게 공급한다는 것. 이렇게 될 경우 2차 거래처 공급가격은 1000원이 싸진다. 소매가격이 같기 때문에 결국 유통업체들은 그만큼 이익을 더 얻게 됐다. 두산으로선 출고가격의 약 10%에 해당하는 큰 폭의 마진을 포기하는 고육지책이었으나 업체들은 ‘처음처럼’을 유통할 충분한 이유를 갖게 됐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도 병행했다. 새로운 제품에 승패를 걸고 모든 리소스를 신제품에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제품인 ‘산소주’는 시장에서 그대로 유지하며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비했다.
결과
철저한 사전준비를 거쳐 신제품이 출시되자 시장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2006년 1월 전국 시장 점유율이 5.2%에 그쳤던 두산은 ‘처음처럼’ 출시 한 달 만에 8.3%를 달성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전국 소주 시장의 13.7%를 차지했다. 특히 서울에서는 시장 점유율이 25%에 달했다. 판매물량에서도 괄목할 만한 증가세를 보였다. 두산은 51일 만에 100만 박스를 판매하는 쾌거를 올렸다. 두산의 소주 브랜드가 100만 박스를 넘은 것은 ‘그린’ 소주 이후 7년 만에 처음이었다. 생산 라인 가동이 속도를 더했다. 3개 라인 중 1개 라인이 쉬고 있었던 강릉공장은 모든 라인을 풀가동하고도 모자라 2개 라인을 추가로 설치했다. 고객의 잠재 욕구를 찾아내고 기존 관행을 깨뜨렸던 과감한 변신의 과실은 달콤했다.
장유택 편집장 chang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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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아이디어 그룹
두산에는 대학생 아이디어그룹이라는 마케터 그룹이 있다. 대학생 아이디어그룹은 ‘처음처럼’ 마케팅 PR 공모전을 준비했던 대학생들의 인맥을 형성해 주고 대학생들의 커뮤니티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시작했다. ‘처음처럼’ 카페에서 소모임 형식으로 시작한 5명의 그룹은 26명으로 늘어나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췄다. 정식 아이디어그룹으로 발전한 이들은 3월 초에 1기 활동을 마무리했다. 대학생 아이디어그룹의 활동은 2주에 한 번씩 하는 전체 회의와 개별적으로 진행되는 팀회의로 구성된다.
전체 회의는 각자 할당된 개인과제를 준비하여 발표하는 시간과 ‘처음처럼’의 마케팅실무진 강의, 학생들의 브레인스토밍 등으로 이뤄진다. 개별 팀 모임에서는 자율적인 회의를 통해 팀별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기수마다 2번씩의 팀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임직원들 앞에서 팀 프로젝트의 결과를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또 친목을 위한 워크숍, 공장 견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곁들여 진다. ‘처음처럼’ 대학생 아이디어그룹은 3월 중 전국 대학의 2, 3학년생을 대상으로 2기 멤버를 선발, 확대 운영한다. 한 기수는 4~5개월간 활동하게 된다. 두산은 향후 이 그룹의 기수별 네트워크는 물론이고 실무자들과의 지속적인 네트워크도 유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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