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보험사를 통해 엔화 대출을 받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엔금리가 워낙 싸니까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 원금 상환 부담이 커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금리가 충분히 싸니까 원금 상승이 일어나도 금리 차이 이하로만 일어나면 크게 손해볼 건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금리차가 연 4%로 5년 정도 대출을 받으면 20%이니까 환율 절상폭이 20% 이내이면 된다는 것이었다.

자금이 필요 없어서 얘기를 끝내기는 했지만 금리가 싸다는 것이 엄청난 매력포인트임을 실제로 느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와 똑같은 거래가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오랫동안 일반화돼 왔다.

엔 금리가 상당히 오랜 기간 저금리로 유지되는 바람에 엔자금을 빌려다가 투자를 해 적당한 수익을 올리면서 싼 금리를 지급,순익을 챙기는 거래가 매우 일반화돼 있는 것이다.

소위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가 바로 이런 전략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엔을 빌려다가 금리가 높은 달러채권을 사거나 가격 변동이 심한 원자재를 사기도 한다.

달러 기준으로 줄잡아 7000억달러 내지 8000억달러 정도가 이런 거래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투자펀드나 일반 기업까지도 이런 거래에 가담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거래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반드시 외환시장과 환율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엔을 빌려다가 달러로 바꾸는 과정에서 엔을 팔고 달러를 사는 외환거래가 일어난다.

반대로 원금을 갚으려면 달러를 팔고 엔을 사들이는 거래가 일어난다.

외환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선물환시장을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선물환율에는 양국 간 금리차가 미리 반영돼 있어 선물환을 이용하는 순간 엔이 아닌 달러자금을 빌린 것과 같은 효과가 나온다.

나중에 엔을 사들일 때 적용되는 선물환율이 금리차만큼 불리하게 돼 있어 엔으로 빌리는 데 따른 저금리의 장점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결국 선물환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환위험을 고스란히 지게 되는 것이므로 저금리의 즐거움에는 환위험의 괴로움이라는 대가가 따르는 것이다.

물론 과거 엔가치가 높은 상황(예를 들어 1엔=10원)에서 엔을 조달한 후 팔아서 원화로 바꿔 자금을 이용하면서 선물환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던 경우는 다르다.

다행히 그동안 엔 가치가 하락했으므로 원·엔 환율을 기준으로 원금가치가 20% 정도 하락하는 행운을 얻은 셈이다.

따라서 지금 선물환 계약을 체결한다면 그동안 본 이익은 그대로 보전할 수 있으므로 총체적으로는 이익을 고정시킬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엔을 팔고 달러를 사서 투자하는 자금이 많아지면 엔의 가치는 외환시장에서 떨어지게 된다.

매도세력의 힘이 엔화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 경제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엔이 낮게 유지된 것은 바로 이 엔 캐리 트레이드의 힘이었다.

엔이 저평가되면 일본 수출업자는 신이 난다.

달러를 벌어들여 엔으로 바꿀 때 많은 엔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 엔 캐리 트레이드가 일어나도록 도와주면서 엔의 저평가에 따른 수출경쟁력 강화를 도모한 것이고,이것이 일본 경제의 회복에 상당한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환율이라는 것이 일정 기간 수급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는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가치,즉 해당 통화 발행국의 경제 상황을 언젠가는 반영할 수밖에 없다.

경제가 잘 되는 나라의 통화는 궁극적으로 강세로 가는 것이고 경제가 안 좋으면 결국 통화는 약세가 될 수밖에 없다.

10년 여의 불황을 딛고 서서히 기지개를 켜면서 나아지고 있는 일본 경제의 모습을 보면 엔이 강세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인 셈이다.

결국 최근 엔의 강세 가능성에 주목한 일부 펀드들은 빌려온 엔을 빨리 갚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운용자산을 금융시장에 내다파는 동시에 엔을 사들여 차입자금을 조기 상환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의 조기 청산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엔은 강세로 돌아섰고 여기에 미국 경기의 둔화 가능성과 중국 경제의 긴축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주식시장까지 출렁였고 검은 수요일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며 위기감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국제금융시장에는 달러자금이 엄청나게 풀려있다.

이 자금의 일부가 미국 국채 매입을 통해 미국으로 환류하기는 하지만 전부 환류되는 것은 아니므로 결국 이는 글로벌 유동성 과잉으로 연결되고 있다.

물론 달러가 충분히 풀리면서 전 세계에서 외환위기가 거의 사라지고 이 바람에 IMF가 할 일이 없어져서 큰일이라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유동성 과잉의 순기능 중 하나인 셈이다.

하지만 달러 과잉 공급이 최근 전 세계적 부동산가격 상승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고 보면 달러 공급 과잉이 빚어내는 일종의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주목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면서 달러가 시장에 쏟아지기 시작하면 이런 추세는 가속화된다.

우리나라 외환보유고 2400억달러의 가치를 원화로 환산해 보면 달러당 1200원인 경우 288조원인 반면 달러당 950원에서는 228조원이다.

60조원가량이 줄어드는 셈이다.

물론 이런 단순 비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예는 달러 공급 과잉 내지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부작용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런 불균형이 계속 되기는 힘들다고 볼 때 미국 일본 중국 3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균형의 회복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소위 신플라자 합의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이 최근 제기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자산운용에 있어서 달러표시 금융자산보다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실물자산 쪽에 역점을 둘 필요가 있고 이런 부분은 외환보유액의 운용이나 펀드운용 등에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형태의 대체투자(alternative investment)에 나서야 할 필요가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한번의 회오리가 몰아치기 전에 대비를 서둘러야 할 때다.

/서울시립대 교수 chyun@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