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이전 대회와는 완연히 다른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정책실패에 대한 당국의 사과와 시인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 5일 정부공작(사업) 보고를 통해 환경과 에너지분야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국민들에게 솔직히 인정했다. 우이 부총리는 지난 7일 의료비가 너무 올라 고통을 준 데 대해 사과했다. 마카이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은 부동산시장에 문제가 많다고 시인했다.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지도자와 정부의 권위를 앞세워 실적을 포장하던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속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여전히 찜찜한 게 있다. 전인대 이전에 간간이 제기되던 정치체제의 개혁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전인대에 모인 각 대표들 역시 이 문제는 성역처럼 여기고 있는 듯하다. 전인대가 열리기 전에 TV방송프로그램을 통제하고,언론에 점수제를 도입하는 등 입단속을 부쩍 강화한 게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원자바오 총리가 '정치개혁보다는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다'라고 못을 박아버린 것도 정치개혁의 논의를 막아버린 것 같다. 전인대 대표들은 '민생(民生)'이라고 그어진 선 안에서만 움직일 뿐 정치개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 의료문제나 환경오염,그리고 집값 폭등 말고는 사과할 게 없을까? 또 중국의 발전을 위해 논의할 다른 주제가 없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소득분배의 문제나 부정부패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가 정치개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변신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전인대에서 나타난 공산당 지도부의 '변신'은 역설적으로 정치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현 지도부의 입장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 같다.

전인대가 열리는 인민대회당 바로 앞의 톈안먼 광장이 전인대를 위한 주차장으로 쓰일 게 아니라 중국인들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