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 < 소설가 >

며칠 전부터 생각이 어수선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당장에 넘겨야 할 원고가 있는데도 머릿속은 글 한 줄 허용하지 않았다. 각(角)을 세우며 쳐들어오는 봄 햇살 때문이려니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아보려 했지만 도무지 원고에 마음이 붙지 않았다. 기실 나는 그때 봄 햇살에 마음을 빼앗기지도 않았고,꽃향기에 생각이 어지럽지도 않았다. 알 수 없는 미래가 자꾸만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컴퓨터 앞에서 물러나 책장을 정리했다. 오래전부터 해야지 하면서 미뤄두고 있었는데,심란한 마음도 다스릴 겸 해서 손을 댔다. 묵은 책들을 다시 분야별로 골라 한곳에 정리하고,꼭 필요하지 않은 책들은 어디 가까운 공부방에라도 기증할 심산이었다.

그렇게 봄볕 사이로 끌려나온 책들은 내 지나온 시간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어떤 책은 모서리가 닳을 정도로 손을 타있었고,어떤 책은 내용이 가물가물했으며,어떤 책은 안타깝게도 읽지를 못했다. 한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책들은 갈피갈피에 그때의 단상(斷想)들이 적혀 있었다. 밑줄 쳐진 곳과 그 밑에 깨알처럼 쓰여 있던 생각의 편린들을 읽어보았다. 그때는 정서적으로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어 밑줄을 쳤겠지만,지금에 와선 그 구절이 마음에 닿아오지도 않았고,오히려 무심히 지나쳤던 부분이 정수리를 쿵 때리며 다가오기도 했다. 세월의 간극만큼 내 생각과 정서는 그만큼 여물어지고 둔감해졌다는 증거였다. 그러다 툭하고,발밑으로 무언가 떨어져 내렸다. 반으로 접힌 흰 종이 안에 같은 문구가 낙서처럼 반복돼 쓰여 있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법구경의 한 구절인데,그 구절 주변으로 함께 들어있는 다른 낙서들로 미뤄보아 아마도 그때 몹시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80년대 초 무렵,한 지방 방송사에 근무하던 때였다. 막 20대에 접어들었으니 여러 가지 미망이 내 눈을 어지럽히고,불확실한 미래가 안주를 방해하던 때였다.

그때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떠한가. 그 젊은 날의 방황이,미망이,미혹이 여전히 나를 어지럽히고 있는 중이다. 이만큼 세상을 살았다면 엽렵하게 내 갈 길을 알고,장애물을 치우며 뚜벅뚜벅 걸어 가야 할 테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불확실성에 좌표를 잃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인 박탈감. 타인들이 지닌 빛나는 보석들이 나를 주눅 들게 하고 미래를 걱정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게 마음이 빚어낸다는데,탐욕과 허욕이라는데,행여 이 마음 또한 내가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책을 덮고 가만히 심호흡을 했다. 끄집어 내놓은 책들에서 떨어져 나온 미세한 종이먼지들이 내 날숨에 딸려 폐부 속으로 들어왔다. 사실 근래 들어 나는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 나이까지 꿈으로 남아 나를 달뜨게 만드는 좋은 소설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지만,그 좋은 소설에 갇혀 길을 잃고 만 것이다. 불혹(不惑)을 훌쩍 넘긴 내가,아니 지천명(知天命)을 몇 해 남겨놓지 않은 내가 이러는데 하물며 젊은 사람들이야.

최근에 절망 바이러스가 유행을 타고 있다고 한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최고. 먹고 살 걱정 없이 우울의 감정을 즐기다 덜컥 극단의 선택을 한 사람들과는 그 내용적으로 우울의 깊이가 다르다. 나 역시 소설이 가져다주는 배고픔에 마음이 심란하고 미래가 불안한데 자신이 서있을 곳을 빼앗겨 버린 사람들은 오죽할까. 정말 마음먹고 투정을 부리자면 할 말이 많다. 왜 풍요롭고 치안이 잘 되는 나라에서 태어나지 못했는지,왜 부잣집 자제로 태어나지 못했는지,왜 천재의 뛰어난 능력을 부여받지 못했는지 불만이 많다.

하지만 손바닥을 뒤집듯 생각을 뒤집어보면 그래도 우리는 행복한 이들이다. 가난과 기아로 허덕이는 검은 대륙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만도,독재를 청산한 것만으로도,당장에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많은 것을 가진 것이다. 모든 근심과 불안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 누가 있을까. 지금,삶을 힘들어하는 이들이여,일체유심조,이 평범한 진리를 기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