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이 '샌드위치론'에 이어 다시 한번 한국 경제 위기론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 회장은 9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투명사회협약 대국민 보고대회'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삼성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5∼6년 뒤에는 큰 혼란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 주력 업종의 이익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질문에도 어두운 표정으로 "심각하죠"라고 답했다.

이 회장은 앞서 지난 1월2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도 한국 경제에 대해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상황에서 샌드위치 신세"라며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고생을 많이 해야 하는 게 한반도의 위치"라고 주장했었다.

이 회장이 올해 들어 잇따라 '위기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가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앞으로 삼성을 먹여 살릴 새 성장동력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미래에 대한 이 회장의 우려는 한국 경제 전체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을 주력으로 하는 삼성전자의 사업구조가 과도하게 제조업 중심으로 짜여진 한국의 산업구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지난해 새 경영 화두로 '창조 경영'을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상황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며 "기존과는 전혀 다른 사고로 한국 경제의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이 회장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에 대해 "국내에서 할 사업은 아니다.

내수는 해야겠지만 수출은 아니다"며 "개도국으로 넘겨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는 수원 본사 및 광주공장은 연구개발(R&D),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등에 집중하고 범용 제품의 생산기지는 원가 절감이 유리한 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위기 극복을 위한 경영 구상 및 현지 사업 점검을 위해 이달 말부터 약 한 달간 유럽과 중국을 잇달아 방문할 계획이다.

한편 이날 투명사회협약 대국민 보고대회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정·재계 및 시민단체 인사들이 참석,'투명한 대통령선거를 위한 서약'에 사인했다.

재계에서는 강신호 전경련 회장과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이건희 회장,구본무 LG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